죽음의 축제 지휘한 젊은 거장…음 하나하나가 춤추듯 다가왔다

입력 2024-10-17 17:31   수정 2024-10-18 02:11


죽음이 젊음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 바로 ‘춤추는 죽음’이 된다. ‘말러 교향곡 9번’(Mahler Symphonie No. 9 in D Major)이 젊고 재기발랄한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를 만났을 때 얘기다.

지난 2일 핀란드 출신 28세 젊은 지휘자 메켈레는 프랑스 파리 필하모니 콘서트홀에서 자신이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파리 오케스트라와 함께 ‘말러 교향곡 9번’을 연주했다.

8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본 안드리스 넬손스와 빈 필하모닉의 ‘말러 교향곡 9번’ 연주는 폭넓은 소리 경험과 묵직한 인상을 남겼는데, 현재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촉망받는 지휘자인 메켈레가 파리 관현악단과 함께 이 곡을 공연한다면 과연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말러 교향곡 9번’은 1909년 말러가 이탈리아 슬루더바흐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면서 초고를 완성했고, 틈틈이 작업한 끝에 1910년 미국 뉴욕에서 총보를 완성한 교향곡이다. 이 곡을 작곡할 때쯤 말러는 육체적,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었다. 오랜 기간 앓고 있던 심장 질환이 점점 더 심해졌고, 새로 부임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는 한 시즌밖에 지휘하지 못한 채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에게 자리를 내줘야 했으며, 아내 알마가 건축가이자 바우하우스 설립자인 발터 그로피우스와 외도한 사실을 알게 돼 (프로이트에게)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할 정도였다.

1911년 5월 18일 말러가 하늘나라로 가기 전까지 그에게 일어난 비극적 상황들은 악보에 있는 신비로운 문구들(1악장 267마디 “오! 젊음이여! 사라졌구나! 오 사랑이여! 가버렸구나!”, 1악장 434마디 “안녕! 안녕!”, 4악장 종결부에 표시된 “죽어가듯이” 등)과 어우러져 곡을 접하는 지휘자, 연주자, 청자에게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겨뒀다. 죽음에 대한 은유와 한 작곡가의 치열한 말년을 어떻게 받아들여 연주로 구현하느냐에 따라 ‘말러 교향곡 9번’의 느낌과 깊이는 달라지는 것이다.
메켈레에겐 너무 좁은 포디움…발레하듯 춤추다

메켈레가 활짝 웃는 모습으로 무대에 등장했다. ‘대지의 노래’ 마지막 부분을 모티브로 시작하는 1악장 초반부에서 메켈레는 여느 지휘자와 다름없이 잔잔하고 섬세하게 숨죽인 악기들을 깨웠다. 2주제가 1주제를 휘몰아치듯이 밀어내는 부분에서 메켈레는 온몸을 휘저어가며 오케스트라 단원의 모든 소리 역량을 이끌어냈다. 28분 정도 길이의 1악장이 끝나자 오랜 시간 숨죽이던 관객들은 각양각색의 기침으로 숨통을 틔웠다. 관객들의 기침 심포니에 매켈레는 참던 웃음을 터트렸고, 티를 내고 싶지 않은 듯 고개를 숙인 채 다음 악장을 향한 기운을 가다듬었다.

말러가 즐겨 쓰던 춤곡 형식의 2악장을 메켈레는 발레리나가 춤추듯 지휘했다. 젊은 혈기와 솟구치는 열정이 죽음의 교향곡에 투사돼 공연장 전반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말 그대로 ‘죽음의 무희’ 같은 2악장이었다. 2악장에서 뒤틀리고 어두운 느낌의 렌틀러와 거친 표현의 왈츠는 하나의 드라마처럼 흥미진진하게 전개됐다.

‘아주 빠르고 매우 고집스럽게 연주하라’는 3악장은 ‘해학극’이라는 부제를 지닌 만큼 불협화음을 다소 과장되게 희화화해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트럼펫과 현의 주고받음을 좀 더 극적인 소리의 대조를 주면서 죽음의 축제가 공연장에 펼쳐진 것처럼 이끌고 갔다.

메켈레는 3악장의 주요 포인트와 긴장을 능수능란하게 조절하면서 ‘말러 교향곡 9번’에 골계미와 원숙미를 더했다. 호른 네 대가 공연장 전체를 들이받듯 연주하는 부분은 죽음의 축제가 광기로 재탄생하는 것 같았다.
춤추는 죽음, 숭고한 아름다움으로
죽음 혹은 소멸로 수렴하는 4악장은 A-B-A-B-A 형태의 론도 형식에 185마디임에도 불구하고 약 20분 동안 느린 전개로 청자에게 미학적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부분이다. 현악기 중심으로 구성된 이 악장은 악보에 표시된 ‘죽어가듯이’를 어떤 뉘앙스와 긴장감으로 이끌고 가느냐가 관건이며, 연주가 끝나고 관객들이 약 1분에서 30초가량 묵상 같은 시간을 가진 후 박수를 치는 것이 관례다. 메켈레는 마지막 부분까지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며 곡을 완성시켰다.

연주가 모두 끝나고 30초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메켈레가 자신의 소명을 다했다는 듯 포디움에서 내려왔다. 바이올린 수석연주자를 향해 환하게 웃는 모습에서 음악적 소명을 다한 지휘자의 책임감과 천진난만한 아이의 순수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죽음은 보편적으로 어둡고 두려운 주제일 수 있지만 일상처럼 흔하고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대지의 현상이다. 인간은 ‘갑작스러운 죽음’(Mors Improvisia)에 대해 항상 상기해야 한다. ‘너는 죽음을 항상 기억하라.’ 즉 ‘메멘토 모리’ 근저에 깔린 교훈이 이것이다. 메켈레가 연주한 ‘말러 교향곡 9번’은 이런 일상적 죽음이 언젠가 춤이 되고, 축제가 될 수 있다는 뉘앙스가 짙게 묻어나는 창의적인 해석이었다. 그것은 황망한 슬픔보다 숭고한 아름다움과 더 가깝게 느껴졌다. 지휘자 메켈레의 성장과 다음 연주가 기대되는 이유기도 하다.

파리=이진섭 칼럼니스트·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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