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와르에게는 40만달러(약 5억4000만원), 데이프에게는 10만달러의 현상금이 걸렸다. 데이프는 지난 7월 이스라엘 공군의 표적 폭격으로 사망했다. 자신이 설계한 길이 총 500여㎞의 터널에 숨어 있던 데이프는 건강상 며칠에 한 번은 터널 밖으로 나와야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정보기관에 꼬리를 밟혔다.
하마스 보안 수장 출신인 신와르는 훨씬 용의주도했다. 이스라엘은 신와르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그가 통신기기를 계속 사용하도록 가자지구 내 발전 연료까지 공급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이스라엘군의 급습에 신와르가 10억원 이상의 이스라엘 돈(셰켈)마저 버리고 황급히 피신한 적도 있었으나 결국 놓쳤다. 올여름부터는 신와르가 터널에서 나와 난민들 틈에 여장을 한 채 이동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런 신와르가 그제 이스라엘군의 포격으로 사망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암살한 게 아니라 순찰 중이던 군부대, 그것도 훈련병 부대와 우발적 교전 끝에 숨졌다. 중동 지역을 온통 화약고로 몰아넣은 장본인의 죽음치고는 꽤나 허망하다.
신와르는 가자지구 내 이스라엘 협력자들을 납치,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 선고를 받고 22년간 옥살이를 했다. 그때 히브리어를 배워 이번 피신 기간에도 이스라엘 신문과 TV 뉴스를 봤다고 한다. 그를 조사한 이스라엘 정보요원들의 인물평에는 ‘잔인’ ‘권위적’ ‘교활’ ‘성마름’ ‘철저한 보안 의식’ 등의 표현이 빠지지 않는다. 그가 2011년 상호 포로 교환으로 석방됐을 때 서명한 사람이 바로 지금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다. 그런 탓인지 네타냐후는 신와르를 ‘데드 맨 워킹’(산송장)이라 부르며 이를 갈았다. 신와르의 사망이 중동전쟁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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