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이 불러온 독서 열풍…'북세권'이 뜬다

입력 2024-10-18 17:40   수정 2024-10-23 11:29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도서관, 북카페, 서점 등이 집에서 도보로 5분 거리 내에 있는 ‘북세권’(책과 역세권의 합성어)이 주목받고 있다. 북세권을 활성화한다면 떨어지는 독서율과 성인 문해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집 근처 도서관, 북카페 크게 늘어
18일 문화체육관광부 국가도서관위원회에 따르면 전국 공공도서관은 2019년 1134곳에서 2023년 1271곳으로 늘었다. 독립서점, 북카페 등도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 독립서점 소개 사이트 ‘주식회사 동네서점’에 따르면 2015년 97개에 불과하던 독립서점은 2023년 884개로 8년 동안 아홉 배가량 증가했다. 출판사 문학동네의 북카페 브랜드 ‘카페꼼마’는 2011년 처음 문을 연 뒤 10여 년 만에 7개 지점을 냈다.

공공도서관 건립이 추진 중인 지역에선 집값 상승 기대도 크다. 시립 디지털·미디어도서관이 들어서기로 한 서대문구 남가좌동 가재울역 뉴타운 일대가 대표적이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지난 8월 시립도서관 착공 이후 매수 문의가 체감상 두 배 이상 늘었다”고 귀띔했다.

건설사들도 대형 서점과 업무협약을 맺어 아파트 단지 안에 도서관을 조성하고 있다. GS건설은 2022년 8월 교보문고와 업무협약을 체결해 아파트 35개 단지에 ‘북 큐레이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서울시는 키즈카페, 어린이집, 도서관이 있는 양육친화주택 ‘아이사랑홈’ 주택을 지하철 2호선 영등포구청역에서 200m 거리에 있는 당산 공영주차장 부지에 2026년께 착공할 계획이다.
○‘힙’한 독서 공간으로 독서율 제고 나서
공공분야에선 종이책을 매개로 공연과 전시를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하는 등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는 2022년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도서관을 지붕 없는 서울광장으로 꺼내는 등 새로운 형태의 독서 공간을 선보였다. 전북 익산은 이달 초 서울 야외도서관을 벤치마킹해 배산공원 편백숲에서 ‘해먹숲도서관’을 운영했다.

다만 도서 관련 시설이 늘어나는 것과 반대로 성인 독서율과 문해력은 매년 떨어지고 있다. 문체부에 따르면 연간 한 권 이상 일반도서를 읽은 성인 종합독서율은 지난해 43.0%로 2021년 47.5% 대비 4.5%포인트 떨어졌다. 일각에선 한강 작가 수상을 계기로 서점가 등에 사람이 몰리는 현상이 얼마 가지 않아 끝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한 대형 북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모씨(29)는 “주말에는 늘 만석이지만 아직 책 읽는 사람보다는 커피를 마시면서 노트북으로 일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20·30대 청년층이 최근 종이책을 소비하는 이유가 독서 그 자체보다는 SNS상에서 뽐내기 위한 과시 성격이라는 지적도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종이책 내용을 손으로 옮긴 ‘필사’ ‘필사스타그램’을 검색하면 각각 65만 개, 12만 개의 게시물이 뜬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과시 문화도 독서 습관을 형성하는 좋은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오지은 서울도서관장은 “젊은 사람들이 책을 접하는 목적이 달라졌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에 맞춰 공공도서관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책 추천·요약 서비스 ‘에픽어스’와 북카페 ‘서사, 당신의 서재’를 운영하는 정도성 대표는 “정보 취득을 위해 책을 읽는 사람이 갈수록 줄어드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감각적인 공간을 통해 종이책과 가까워지는 경험을 앞으로 더 많이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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