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겨울 나그네… 최고 권위자들이 펼치는 가곡의 가을

입력 2024-10-22 14:12   수정 2024-10-22 14:13

코끝이 시린 가을, 전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가곡(歌曲)의 권위자들이 잇따라 한국을 찾는다.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1925~2012),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65) 등 전설적인 가곡 성악가들과 작업해온 독일 피아니스트 하르트무트 횔(72)이 그의 제자 소프라노 한경성(45)과 함께 지난 14일 새 음반 '달빛 노래'를 발매했다.



지난 21일 서울 신사동 풍월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두 사람은 새 음반을 소개하는 자리를 가졌다. 한경성은 "횔과 20년 전 독일에서 사제로 인연을 맺었다. 이번 음반은 그와 2년 전부터 함께 준비해온 결과물"이라며 "(횔은) 제 음악적 동반자이자 나뭇가지 사이로 새어 나오는 아름다운 빛을 보게 해준 존재"라고 말했다.

횔은 "우리를 스승과 제자가 아닌 동등한 두 명의 예술가로 봐달라"고 강조했다. 그는 "끊임없는 연습보다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자유롭게 의사소통하고 있다. 내가 일방적으로 가르치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리트(Lied·독일 가곡)는 풍경과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리트라는 길을 따라 가는데, 아침·낮·저녁 등 때에 따라 길은 같아도 풍경이 다르잖아요. 우리의 무대도 그때 그때 다르다는 걸 말하고 싶네요."

이들의 음반 '달빛 노래'는 슈베르트의 '달에게'와 '별빛 비치는 밤'을 비롯해 한국 가곡인 '반달'과 '가을밤' 등 달을 주제로 한 20개의 가곡이 실렸다. 횔은 "달은 영혼의 다양한 측면 반영하는 존재"라며 "특히, 독일 가곡의 뿌리를 이루는 정서인 '그리움'과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소재"라고 했다.

"달은 '그리움'과 '사랑'이라는 감정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독일 가곡 전반에 흐르는 그리움이라는 감정은 '중독'이라는 의미가 포함된 '해소될 수 없는 그리움'을 말하는 꽤 무거운 단어입니다. "



가곡 전문 피아니스트인 횔은 1982년부터 1993년까지 피셔 디스카우의 반주자로 활동한 횔은 독일 가곡에 대한 이해가 깊은 리트 해석의 권위자로 정평 나 있다. 2007년부터 독일 카를스루에 국립음대 총장을 역임하고 있다. 그는 "가곡은 생각보다 단순한 음악이 아니다"라며 "노래와 피아노, 두 악기가 파트너를 이뤄 대화하는 보컬의 '챔버 뮤직'(실내악)"이라고 소개했다.

횔은 1992년부터 가곡의 세계화를 위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여러 나라 일본 한국 중국 등 여러 나라의 가곡을 접하며 가곡을 통해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는 시도를 지속해왔다. 횔은 "인류는 서로 문화가 다를 뿐 모두 동일한 영혼을 갖고 있다"며 "가곡이 문화의 다리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두 사람은 음반 발매 리사이틀도 열었다. 지난 19일과 20일 강릉아트센터와 통영국제음악당을 비롯해 이달 22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연주 투어를 마무리한다.



이달 25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는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의 권위자로 꼽히는 영국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60)의 무대가 예정돼 있다. 이번 무대에서도 그는 핀란드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랄프 고토니(78)와 슈베르트를 들려준다.

보스트리지는 '노래하는 인문학자'로 불린다. 영국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철학 및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은 보스트리지는 1990년 29세에 뒤늦게 성악도가 됐다. 1993년 런던 위그모어홀 데뷔 무대를 대성공으로 이끌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후 1996년 하이페리온 레이블에서 발매한 첫 음반인 슈베르트 연가곡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로 그라모폰 솔로 보컬상을 받았고, 1998년 발표한 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 음반은 그라모폰 베스트 솔로 보컬상을 수상하는 등 주요 음반상을 석권했다. 그동안 그래미상 후보에 무려 15차례 올랐다. 그의 저서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는 13개 언어로 출판된 베스트셀러이기도 하다.



보스트리지는 지난 21일 기자간담회에서 '겨울 나그네'에 대한 변하지 않은 애정을 표했다. 그는 "겨울 나그네는 슈베르트의 독일 가곡 중 최고"라고 평가했다. 겨울 나그네는 사랑에 실패한 청년이 외로운 방랑의 길에서 죽음에 대한 상념에 뒤덮였다가 우연히 만난 동반자와 함께 역경을 이겨낸다는 내용이다. 비극적이고 쓸쓸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 인간의 의지가 아름다운 선율로 그려졌다.

수많은 독일 가곡 중에서도 유독 '겨울 나그네'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 이에 대해 보스트리지와 함께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고토니는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성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사람이라면 모두 다 힘든 순간을 겪었기 때문에 공감하기 쉬운 곡"이라면서 "삶과 죽음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의미를 찾아 나아가는 곡이기 때문에 작곡된 지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감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이처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정서 덕분에 까다로운 독일어 가사도 '겨울 나그네'를 감상하는 데 장벽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보스트리지는 "나도 처음에는 독일어를 잘 못해 가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면서 "그래도 음악이 지닌 소리와 감성을 이해하면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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