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겨우 3.5㎞ 떨어진 판교역까지 오가는 데 매일 2시간을 허비하고 있어요.”
서울 성동구에 사는 20대 직장인 A씨는 판교 제2테크노밸리(제2밸리) 회사까지 출퇴근하는 데 하루 평균 4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회사가 판교 제2밸리로 이전한 뒤 매일 출퇴근 지옥이라 요즘 퇴사를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고 했다.
판교 제2밸리에 입주한 560여 개 정보기술(IT) 기업이 ‘교통지옥’에 아우성이다. 매일 겪는 출퇴근 교통난에 직원들의 ‘이직 엑소더스’가 이어지자 자체 전세버스를 운영하고 교통비까지 지원하지만 역부족이라고 하소연한다. 핵심 인재 이탈에 한 IT 기업은 제2밸리를 떠났고, 다른 기업들도 심각하게 이사를 고민 중이다. 입주 업체들은 “교통 수요예측을 엉터리로 해놓고 입주부터 시킨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탁상행정이 문제”라고 성토했다.
판교 제2밸리는 판교 분기점 북쪽인 성남시 금토동에 43만460㎡ 규모로 개발된 IT 기업 밀집 지구다. KT, 삼성SDS 등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 총 560여 곳이 입주를 마친 상태로 현 공정률은 80%, 2만여 명이 출퇴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교통 인프라가 없는 상태에서 입주가 몰려 인근 간선도로를 드나드는 데만 30~40분이 걸리는 게 일상이다. 왕복 4차로인 내부도로의 2개 차로를 공사 차량이 점령한 것도 교통난을 키우는 요인이다.
입주사들은 교통 문제 탓에 IT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인재가 빠져나가고 있다고 비명을 지른다. 픽셀플러스 관계자는 “지난 3월 수원 영통구에서 판교 제2밸리로 사무실을 옮긴 뒤 직원 18명이 퇴사했다”고 하소연했다. 차량용 반도체 기업인 텔레칩스는 작년 8월 시너지를 낼 요량으로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을 사옥에 유치했지만 이 회사는 5개월 만에 다시 서울 강남으로 빠져나갔다. 교통난을 못 견딘 직원의 퇴사 러시가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입주사 직원 사이에선 ‘2밸리는 섬’ ‘교통 오지에 오지 마세요’라는 자조 섞인 얘기가 오간다.
궁여지책으로 매달 20만원씩 교통 수당을 주거나 인근 판교역·야탑역·정자역 등을 도는 전세버스를 마련한 기업도 있지만 근본 대책은 되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 직원 C씨는 “오후 5시30분에 ‘칼퇴근’해도 서울 집에 도착하면 8시30분이 넘을 때도 있다”며 “도보로 출근하려고 인근 원룸을 알아봤는데, 대부분 월세가 100만원을 넘어 부담이 컸다”고 했다.
제2밸리는 제1수도권순환선·경부·용인서울고속도로 등이 교차하는 판교 나들목과 가깝기에 교통 문제는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학과 교수는 “당분간 자가용은 제한하고 대신 전용 셔틀만 단지에 진입시키는 등의 단기 개선 방안이 시급하다”고 했다.
판교 제2밸리의 교통난은 입주율이 올라갈수록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LH가 진출입로의 정체를 해소할 서판교 연결로, 제2경인고속 연결로 등을 조기에 개통하겠다고 밝혔지만 최소 2~3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앞으로 IT 산업단지 지구단위 계획을 짤 땐 시설이 아니라 인력이 중심이라는 점을 충분히 고려해야 교통 수요예측 실패를 최소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판교=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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