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이 전 세계 2~4위를 싹쓸이하고 있는 산업이 조선업이다. 조선 강국인 한국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업고 급성장한 중국의 맹추격으로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과 세계 1위 자리를 놓고 월별, 분기별로 엎치락뒤치락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누적 수주량은 중국이 3467만CGT(표준선 환산톤수), 70%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872만CGT(18%)로 2위다.
최근 중국의 1·2위 국영 조선사인 중국선박그룹(CSSC)과 중국선박중공업그룹(CSIC)의 합병이 임박하면서 국내 조선업계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합병으로 출범하는 신설 국영 조선사는 자산 규모 75조원, 전 세계 조선 수주 시장의 3분의 1을 장악하는 ‘공룡 조선사’다. 세계 1위인 HD현대중공업의 4배에 달한다.
중국은 그동안 정부 지원, 저가, 거대한 내수시장을 무기로 기술 장벽이 높지 않은 컨테이너선 시장을 빠르게 잠식해왔다. 문제는 중국의 가파른 질적 성장세다. 한국이 강점을 가진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비롯해 암모니아, 메탄올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에 속속 뛰어들면서 높아진 기술력과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한국과의 격차를 좁히고 있다.
중국 조선 공룡 탄생을 계기로 연구개발(R&D) 투자에 집중해 기술력을 축적한다면 K조선에 대한 추격 속도가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지난해 조선업 가치사슬 종합경쟁력에서 중국은 한국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산업연구원이 지난 5월 발표한 ‘중국에 뒤처진 조선업 가치사슬 종합경쟁력과 새로운 한국형 해양전략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조선업의 한·중·일 집중 및 중국 의존도가 심화한 가운데 조선업 가치사슬 종합경쟁력에서 지난해 중국이 90.6으로 한국(88.9)을 1.7포인트 앞섰다.
한국은 R&D, 설계, 조달 분야에서 중국보다 우위였지만 격차는 좁혀졌고 생산 부문에서 중국에 역전됐다. 선종별로 보면 한국 조선산업은 기술경쟁력이 매우 중요한 가스운반선에서만 차별화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수주잔량 기준에서 단일 조선소로는 삼성중공업,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HD현대삼호 등 한국 대형 4사가 1∼4위를 차지했지만 조선소 그룹을 기준으로 하면 중국 최대 국영 조선그룹인 CSSC가 큰 격차로 1위를 차지했다.
중국은 컨테이너선과 벌크, 유조선 분야에서 이미 한국을 추월했으나 LNG 선박 분야는 아직 뛰어넘지 못했다.
한국의 조선 3사(HD한국조선해양·삼성중공업·한화오션)가 독주하던 대형 LNG 운반선 시장에서도 후발 주자인 중국 조선사들의 추격이 빨라지고 있다. 최근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올해 1~9월 전 세계 친환경선박의 70% 이상을 자국 조선업계가 수주했다고 발표했다.
실제 중국선박공업그룹(CSSC)은 지난 4월에 이어 9월 카타르에너지로부터 초대형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총 24척을 따냈다.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전 세계 친환경 선박의 50% 이상을 생산하겠다는 목표다.
전문가들은 조선업 초격차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선 친환경 탄소저감 기술과 자율운항기술 등 차세대 기술 선점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중국처럼 보조금과 세제혜택을 주는 정책 지원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 조선사들이 슈퍼사이클 진입 등으로 4년치 일감을 확보한 가운데 수주경쟁력 제고와 수출 확대를 위해 정부도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 6월 정부와 12개 금융기관은 총 107억5000만 달러(약 15조원) 규모의 ‘선수금환급보증’(RG)을 공급하기로 했다. 정부는 10년간 2조원 이상을 투입해 친환경·디지털·스마트 3대 분야에서 100대 코어기술을 개발, 2040년 세계 최고 조선기술 강국으로 도약할 계획이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