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스크랩을 녹여 철강 제품을 생산하는 전기로 11기를 보유한 현대제철은 원가에서 전기료가 차지하는 비중(10% 이상)이 가장 높은 대기업 중 하나다. 지난해에만 1조84억원의 전기료를 냈는데, 고로 중심인 포스코(5028억원)보다 두 배 많았다.
하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다. 2021년 이후 63.3%나 상승한 산업용 전기료가 24일부터 또 다시 평균 10.2%(대기업 기준) 오르기 때문이다. 현대제철이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전기료는 연 1166억원에 달한다. 올 상반기 영업이익(1538억원)의 75.8%에 해당하는 돈을 전기료로 뿌려야 한다는 얘기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현대제철이 미국에 전기로 공장 건설을 검토하는 이유 중 하나가 국내 전기값의 급격한 인상”이라며 “미국의 높은 인건비를 감안해도 미국에서 사업하는 게 낫다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수년째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디스플레이 기업들은 전기료 인상에 한숨을 짓고 있다. 올해 1862억원 영업적자가 예상되는 LG디스플레이는 앞으로 연간 전기료를 934억원(지난해 8075억원→9009억원) 더 내야 한다.
정제마진 하락으로 3분기 적자가 예상되는 SK에너지와 에쓰오일도 마찬가지다. 국내 전력 사용량 8위와 9위인 이들 기업의 전기료는 각각 500억원씩 늘어난다. 그렇다고 제품가격을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중국기업들의 저가 물량공세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정용 전기료를 동결한 건 포퓰리즘이란 비판이 나온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2020년 12월 기준 대형 제조업체의 산업용 전기료(300kW 이상)는 1kWh당 94.3원이었다. 이후 8차례나 산업용 전기료를 올리면서 4년 간 70% 이상 상승했다. 같은 기간 가정용 전기는 35.9% 오르는 데 그쳤다. kWh당 전기요금 역시 가정용이 149.8원으로 대기업 요금(KW당 181.5원)보다 낮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산업용 전기는 이미 원가보다 높은 가격에 공급되고 있다”며 “원가 대비 60% 수준에 공급되고 있는 가정용을 올리는 게 맞다”고 말했다.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글로벌 빅테크의 데이터센터를 수십 곳 유치한 일본과 인도, 대만과 제자리 걸음인 한국의 결정적 차이는 전기료와 송배전망 경쟁력”이라며 “전기료 인상과 함께 송배전망까지 지어야 하는 상황에서 글로벌 기업의 외면은 더 심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기업들의 해외 이전도 가속화할 전망이다.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2021년부터 미국을 앞질렀다. 낮은 전기료는 직접 보조금과 함께 미국이 해외 기업을 유치할 때 쓰는 핵심 카드가 되고 있다. 전기료가 기업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요인이 되자 유럽도 전기료 인하에 나섰다. 독일이 대표적이다. 치솟는 전기료(㎾h 370.3원)에 제조업체들이 떠나자 독일 정부는 지난해 11월 전기료에 부과되는 세금을 97% 감면해주기로 했다.
김형규/성상훈/오현우 기자 k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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