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가 요즘 잘되는 게 없죠. 주력인 유통은 쿠팡 같은 온라인에 밀려서 힘을 잃고 있습니다. 캐시카우 역할을 했던 롯데케미칼은 ‘돈 먹는 하마’로 전락했고요. 호텔롯데는 상장 계획이 무기한 연기됐습니다. 한때 국내 5대 그룹에 들었던 롯데였는데요. 포스코에 밀려서 현재는 6위로 내려앉았습니다. 롯데가 이렇게까지 힘을 못 쓰게 된 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최근 벌어진 몇 가지 결정적인 순간에서 비롯됐습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하지만 그때 다른 결정을 했다면 어땠을까요. 비교적 최근 벌어진 안타까운 순간을 담아 봤습니다.
①롯데면세점, 인천공항 철수
첫 번째는 롯데면세점의 인천공항 철수입니다.
롯데면세점은 작년에 인천공항에서 매장을 전부 들어냈습니다. 2001년 인천공항 개항 이래 22년간 유지한 영업장을 없앤 것이었어요. 인천공항공사에 내야 하는 임차료가 너무 비싸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이 내긴 했습니다. 22년간 영업하면서 낸 임차료가 4조원을 넘었습니다. 연평균 1900억원씩 낸 것이죠. 인천공항이 최근 제2터미널을 두 배로 확장하고 활주로도 추가하는 공사를 마쳤는데요. 여기에 투입된 돈이 4조8000억원입니다. 롯데는 이 돈 또 내느니 차라리 시내에 면세점 더 짓고 가격도 더 싸게 팔아서 손님을 시내점으로 끌어 모으겠다는 전략을 세웠는데요. 이 전략은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면세점 산업이 시내점 위주에서 공항점으로 급격히 바뀌었거든요.
코로나 사태 이전엔 중국 사람들이 단체 패키지 관광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그 이후엔 중국 보따리상이 한국 면세점에서 물건을 쓸어 담았어요. 이땐 시내점이 장사하기 좋았죠. 그런데 최근 1~2년 새 이분들이 싹 다 사라졌어요. 중국 하이난 같은 곳에 한국을 대체하는 초대형 면세점이 생겼거든요. 또 여행 패턴도 바뀌어서 단체보다는 개별 관광객이 늘었고요. 개별 관광객은 시내 면세점 잘 안 갑니다. 살 게 있으면 다이소, 올리브영 갑니다. 면세점은 대부분 공항점 이용하고요.
②통합 온라인몰 롯데온 출범
두 번째는 온라인 사업입니다.
롯데는 2020년에 통합 온라인 앱 ‘롯데온’ 을 내놓습니다. 백화점, 마트, 슈퍼, 홈쇼핑, 닷컴 등 7개 계열사 온라인 쇼핑몰을 하나로 통합한 것이었어요. ‘유통공룡’ 롯데가 시도하는 것이라 당시에 엄청난 이목을 끌었습니다. 쿠팡이 급격히 덩치를 불리고 있었고 코로나 시대로 접어들어서 온라인쇼핑이 한층 중요할 때라 더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 전략도 실패했습니다. 하나로 합치면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란 롯데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오히려 각자 따로 할 때보다 훨씬 못했어요. 합치고 나서 정체성이 모호했거든요. 예컨대 롯데마트와 슈퍼는 합친 뒤에 매출이 3분의 1로 줄었습니다. 사람들이 롯데온 하면 대부분 백화점 옷 파는 곳을 떠올렸거든요. 장 볼 때 쓰는 앱이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던 겁니다.
계열사 사이에 협조도 잘 이뤄지지 않았어요. 각 계열사들이 이미 온라인몰을 통해 매출을 꽤 많이 내고 있었는데요. 이 매출을 롯데온에서 가져간다고 하니까 저항이 거셌습니다. 롯데홈쇼핑의 경우 매출의 절반가량이 앱에서 나오는데 이걸 합쳐서 좋을 게 없었어요. 또 백화점과 홈쇼핑은 주력이 모두 패션인데요. 상품이 겹치니까 서로 조율을 해야 하는데 이런 게 전혀 없었습니다.
롯데온은 출범 첫해인 2020년에 1380억원의 매출을 거뒀습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작년 매출이 1350억원이었어요. 돈 쏟아붓고 매출이 전혀 늘지 않은 겁니다. 대신 적자만 계속 쌓였죠. 지난 5년간 5000억원 넘는 적자가 발생했어요.
시장 평가도 안 좋습니다. 롯데온이 속해 있는 롯데쇼핑의 시가총액은 2조원에 미치지 못하는데요. 여기엔 롯데온뿐 아니라 32개의 백화점, 22개의 아울렛, 6개의 쇼핑몰, 111개의 마트와 356개의 슈퍼가 다 포함된 겁니다. 쿠팡의 시가총액인 약 450억 달러(10월 22일 종가 기준), 60조원의 30분의 1에 불과하죠.
만약 롯데가 롯데온으로 다 합치지 않고 각자 따로 했으면 쿠팡 만큼 잘했을까요. 그러진 않았을 것 같죠. 하지만 지금의 롯데온보보다는 더 잘하지 않았을까요. 롯데가 내년에 그로서리 중심의 새로운 앱을 새로 내놓는다고 하는데요. 하나로 합치는 ‘원롯데 전략’의 실패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을 해야 할 거 같습니다.
③롯데케미칼 기초소재 설비 확장
세 번째는 롯데케미칼의 확장입니다.
롯데에 케미칼은 ‘효자사업’이었죠. 연간 1조원 이상 이익을 가져다 뒀습니다. 이 회사는 주로 기초화학 소재 사업을 합니다. 플라스틱이나 비닐 원료 같은 걸 만들어요. 돈이 너무 잘 벌리니까 인도네시아 타이탄이란 회사도 샀고 미국 루이지애나에 4조원 가까이 들여서 공장도 지었어요. 기초소재 설비를 엄청나게 확장한 겁니다.
그런데 설비를 너무 늘린 게 ‘독’이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던 중국 경기가 확 꺾였고 이 탓에 기초소재 가격이 폭락했어요. 롯데케미칼은 2022년에 7000억원 넘는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죠. 문제는 이런 추세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작년에도 3000억원대 손실을 기록했고요. 올해는 분기당 1000억원대 적자가 나고 있습니다. 영업적자는 내년 혹은 2026년에도 이어질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을 정도입니다. 기초화학 소재 가격이 생산단가를 밑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롯데는 인도네시아에 5조원가량을 들여서 추가로 공장을 짓고 있어요.
기초화학 소재 사업은 앞으로 유망하지 않다는 것을 롯데 내부에서도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도 투자를 계속한 건 반도체 ‘치킨게임’처럼 화학도 치킨게임을 하다 보면 경쟁력 없는 회사들이 다 떨어져 나갈 것으로 오판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죠. 예컨대 사우디 자본인 S-Oil만 해도 울산에 초대형 석유화학 단지를 짓고 있잖아요. 새로운 경쟁자가 계속 유입되고 있어요.
LG화학처럼 배터리 사업을 뒤늦게 하겠다고 뛰어들었다가 어려운 것도 있어요. 2022년에 일진그룹에서 동박 사업을 하는 일진머티리얼즈를 인수했는데요. 당시 인수액이 2조7000억원에 달했습니다. 동박은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소재 가운데 하나인데요. 전기차 산업이 커지면 동박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판단했어요. 그런데 인수 직후에 침체를 겪습니다. 2022년 800억원 넘었던 영업이익이 이듬해인 2023년에 100억원대로 뚝 떨어졌고요. 올 들어 3분기에는 적자를 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롯데는 2010년대 중반 이후 매년 위기였는데요. 2017년 중국 사드 보복, 2019년 ‘노재팬’, 2020년 코로나 팬데믹 같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변수가 많았어요. 여기에 앞에서 얘기한 잘못된 결정까지 겹쳤고요. 롯데 내부적으론 이런 실패를 딪고 큰 변화를 계속 시도 중인데요. 내년엔 롯데가 달라질지 눈여겨보시죠.
안재광 한국경제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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