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창극단 간판스타인 소리꾼 김준수(33). 2013년 창극단에 최연소로 입단한 이후 줄곧 ‘국악계 아이돌’ ‘국악 프린스’로 불렸다. 11년간 우리 소리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창극뿐 아니라 뮤지컬, 대중음악계에서 활약하며 그는 진짜 아이돌이 됐다. 김준수 캐스팅의 공연이 있을 때마다 티켓은 예매 1~2분 만에 전석 매진된다.
김준수는 올해 소리꾼의 여정에 새로운 이정표를 찍었다. 지난 3일부터 6일까지 영국 런던 바비칸센터에서 창극 ‘리어’를 공연한 것.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을 국립창극단이 각색해 2022년 초연한 작품에서 30대 초반 김준수는 반백의 리어 왕이 돼 무대에 섰다.
이 무대는 도전이자 파격이었다. 영국의 자랑인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 왕을 한국의 전통극단이 얼마나 표현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던 이도 많았다. 공연이 끝나자 이변이 일어났다. 매회 기립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온 것. “당신의 리어는 정말 대단했다!” 분장을 지우지 못한 채 바비칸센터를 나서던 김준수를 알아본 현지 관객들에게 둘러싸이기도 했다.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김준수를 18일 국립극장에서 만났다.
도회적인 얼굴에 뿔테 안경을 걸치고, 연둣빛 니트와 진한 청색의 데님을 입은 그가 걸어 들어왔다. 부채를 펼쳐 들고 소리를 뽑아내는 모습이 한껏 멋스러웠다. 김준수는 “자신의 본질은 소리에 있다”고 했다. 국악 아이돌이라는 별명보다 ‘모던한 소리꾼’이 그의 정체성에 더 가깝다.
“극이 진행될수록 관객들의 표정이 또렷이 보였어요. 셰익스피어 작품이라 그런지 모두 무척 진지했어요. 그런데 관객이 저희 유머에 중간중간 활짝 웃더라고요, 자막을 거쳤어도 해학이 잘 전달되는 신기한 경험을 했어요.”
김준수는 여독이 풀리기도 전, 국립창극단의 다음번 무대 ‘마당놀이’(11월 29일 개막) 준비에 나섰다. 리어 왕이었던 그는 이제 성춘향의 반쪽 이몽룡을 연기한다. 이몽룡은 김준수에게 어찌 보면 난도가 낮은 캐릭터일지도 모른다. 춘향전의 고장인 전북 남원에서도 해봤고 창극단에서도 해봤으니 익숙하지 않을까.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이몽룡은 10대잖아요. 오히려 제가 어릴 때는 맞춤옷을 입은 듯 편안한 캐릭터였다면 이제 그 나이의 풋풋함과 현재 저의 간극이 생겼어요. 예전과 다르게 고민하는 지점이 있어요. 그 점을 생각하면서 연습하려고 해요.”
김준수는 전남 강진이 고향이다. 초등학교 시절 음악 선생님이 민요를 부르는 그를 눈여겨봤다. “꺾는 음, 떠는 음 등 민요의 맛을 제가 잘 따라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길로 전통자랑 겨루기 대회라는 곳에 나갔는데 거기서 진짜 판소리를 만났죠. 두 살 위 누나가 애를 쓰면서 노래하는데, 애절하고 슬픈 감정이 고스란히 와닿았습니다. 나도 소리꾼이 되고 싶었어요.”
느닷없이 찾아온 장래 희망이었다. 집안에는 예술가가 없었고 형편도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셨어요. 벼, 고추, 마늘…. 다양한 작물을 하셨는데 저도 모내기와 수확을 도우며 논두렁, 밭두렁에서 노래를 불렀어요. 농약을 치면서도 소리를 했고요. 월출산에서 달랑 부채 하나 들고, 고수가 없으니 바위를 두들기면서 박자를 맞추며 노래했어요.”
고1 때 잠깐 사춘기가 찾아왔지만, 은사님과 소리 덕분에 그 기간도 수월하게 지나갔다. 서울 땅은 대학에 진학하면서 밟았다. 대학교 1학년 때 국립창극단 ‘청’의 객원 단원으로서 ‘상여꾼’으로 나와 합창하면서 창극단에 들어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2013년. 국립창극단이 10년 만에 단원을 선발하던 때, 김준수는 대학 재학 중 최연소로 입단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국립극장 무대는 물론 TV 예능, 뮤지컬 등 다양한 활동으로 ‘판소리’의 진수를 알리는 데 주력해왔다.
국악계에서는 그의 인기가 아이돌 가수 못지않다. 그의 해외 공연이 있을 때도 1, 2열에 앉아있는 진성 팬들이 있을 정도다. “이번 <리어> 때도 팬분들이 추임새를 적극적으로 넣어주시면서 기를 살려줬어요. 주변에서는 스타가 되니 어떠냐는 질문을 많이 하시죠. 그런데 저는 제가 많이 알려질수록 제 무대에 대한 부담감도 커졌다고 말해요.”
김준수는 이몽룡을 비롯해 지난 10여 년간 패왕별희의 ‘우희’, 트로이 목마의 ‘헬레네’, 서편제의 고수 ‘동호’로 무대에 섰고 동서양의 왕(고종 황제, 리어왕)과 샤먼까지 연기했다. 성별과 나이대를 자유롭게 오가는 배우다. 다양한 캐릭터를 온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해내는 그만의 방식이 있을까.
“리어를 연기할 때는 최대한 노인이 되지 않으려고 했어요. 짱짱한 리어. 제가 어떤 리어를 따라 한다고 했을 때는 흉내 내기에 급급해지기에 오히려 연기가 어색해져요. 그래서 제 스스로 해석한 리어가 되자고 생각했고, 그렇게 접근하니 모든 제스처, 행동, 노래가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모방에서 시작되지만 종래에는 내가 되는 것. 그게 연기인 것 같아요.”
오페라나 뮤지컬은 작품에 떠오르는 마스코트와도 같은 곡들이 있다. 창극은 아직 그 정도의 대중성이나 파워가 없다. 그 점이 김준수를 무대에 서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작품 안에서 빛나는 곡이 참 많은데, 이를 더 알리는 것도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관현악단과 협연할 기회가 생기면 제가 창극 곡들을 적극 추천해요. 관현악 연주에 우리 소리가 입혀지면 감동과 파장이 어마어마해져요. 곡으로 창극 무대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소리꾼으로서의 본연을 잊지 않기 위해 판소리 완창(12개 중 현전은 수궁가, 적벽가, 춘향가 등 5개)도 선보인다. 오는 12월 7일, 수궁가로 관객을 맞는다. “판소리 완창은 소리꾼으로서의 영원한 숙제예요. 할 때마다 터득하는 게 생기니 완성(득음)이라는 경지가 왔다고 말할 수도 없고요. 다음번은 춘향가 완창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그러면 소리꾼으로서 어느 단계를 지나가고 있을까. “아직도 깜깜한 터널을 지나는 중이에요. 언젠가는 밝은 빛을 만날 수 있겠지 하며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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