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명령제도는 사기·절도 등 재산범죄 피해자가 별도 민사소송 없이 형사재판 중 손해를 회복할 수 있도록 1981년 도입됐다. 하지만 최근 급증하는 사기 사건에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올 상반기 사기 범죄는 21만6287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17만2324건) 대비 25.6% 증가했다. 배상명령 신청 10건 중 9건이 사기 사건일 정도다.
법원이 배상명령을 기피하는 이유는 피해액 산정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홍민호 법률사무소 한서 변호사는 “사기 범죄 형사재판에서 피의자 상당수는 수거책 인출책 등 하위 조직원으로, 이들에게 배상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김형민 형사전문 변호사는 “다단계·전세 사기처럼 규모가 크고 구조가 복잡한 사건에서 판사들이 손해액 산정을 부담스러워한다”고 했다. 피고의 유무죄와 형벌 정도를 정하는 형사재판에서 손해배상채권의 구체적인 금액까지 심리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보는 판사가 많다는 얘기다.
배상명령제도의 허점 때문에 인용률이 낮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송촉진법 제25조는 △피해 금액 불특정 △배상책임 범위 불명확 △공판 지연 우려 등이 있으면 배상명령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한 변호사는 “배상명령 신청이 소의 제기와 동일한 효력이 있지만 또 확정판결의 효력은 없어 각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월 부산지법은 180억원대 전세 사기를 벌여 기소된 50대 여성에게 제기된 배상명령 신청을 각하했다. 이때도 법원은 “피해자마다 근저당 설정 유무와 최우선 변제금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달라 배상 책임의 범위가 불명확하다”고 각하 이유를 밝혔다.
형사재판에서 배상명령이 각하되면 피해자는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주식 리딩방 사기를 당한 뒤 배상명령을 받지 못했다는 60대 김모 씨는 “사기 때문에 빚까지 생긴 마당에 민사소송 변호사 수임료는 어떻게 마련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서아람 법무법인 SC 변호사는 “사기 재판에서 피해금을 산정할 전문 조사관을 배치한다면 배상명령 인용률을 높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실장은 “상습 사기범 신상 공개로 채무 이행을 촉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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