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저녁, 국민의힘 의원 단톡방에 올라온 배현진 의원의 메시지는 원내 갈등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줬습니다. 한동훈 대표의 행보에 발걸음을 맞추지 않는 추경호 원내대표를 향한 친한계의 날 선 감정이 드러났기 때문이죠.
배 의원을 포함한 친한계 의원 11명은 이날 단톡방에서 추 원내대표를 향해 특별감찰관 추천 문제로 불만을 토했다고 합니다. 이른 시일 내에 의원총회를 열고 특별감찰관 후보를 추천하자는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한 대표는 김건희 여사 문제 해결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 특별감찰관 임명을 주장하고 있지만, 추 원내대표는 '원내 사안'이라며 선을 그은 바 있습니다.
원내 '투톱'인 한 대표와 추 원내대표의 갈등은 소위 '김건희 내전'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그간 '용산'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 미묘한 시각차를 드러냈던 두 사람이 특별감찰관 추천 문제를 두고서는 공개적인 다툼을 벌이는 중입니다.
당 안팎에서는 국민의힘이 이미 "심리적 분당 상태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심리적 분당'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7월 전당대회를 치를 때부터 시작됐습니다. 한 대표가 당 대표로 선출되면 '현재 권력'인 친윤계와 '미래 권력'인 친한계가 정면충돌하면서 심리적 분당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이었습니다. 결국 그 우려가 딱 석 달 만에 현실화한 셈입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대통령 임기가 많이 남았기 때문에 친한으로 확 쏠리고 이거 안 됩니다. 제가 볼 때는 이런 균형 상태가 유지되는데 누가 명분 있게 국민들에게 얘기하느냐를 보고 의원들은 판단할 거라고 봅니다."(친한계 박정훈 의원, 25일 CBS 라디오)
박 의원이 말한 '균형 상태'는 좋은 말로는 균형이지만, 사실상 지금과 같은 양측의 갈등이 한동안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문제는 이들의 갈등이 '공멸'을 향해 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누구는 이기고, 누구는 지는 게임이 아니라 같이 '죽는' 게임이라는 것입니다. 한국갤럽이 지난 22~24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25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윤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20%로 전주 대비 2%포인트 떨어지며 취임 후 최저치와 동률을 기록했습니다.
윤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있는 한 대표도 여론조사에서 부진한 성적을 이어가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져도 한 대표 지지율은 오르는 '디커플링' 현상이 더는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죠. 데일리안이 여론조사공정㈜에 의뢰해 지난 22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 대표는 '차기 대통령 후보 중 가장 비호감인 사람은 누구냐'는 질문에 33.4%를 얻어 '가장 비호감인 대권주자' 1위의 불명예를 안았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9.0%로 한 대표와 오차범위 내의 차이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친윤계나 친한계, 양측은 모두 '이대로 가면 우리가 이긴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권력'인 친윤계는 한 대표에게 사실상 실질적 권한이 별로 없다는 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간 윤 대통령과 갈등 관계였던 당 대표가 여러 차례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물러났다는 것을 고려하면, 경험에 근거한 자신감인 것이죠. 친한계로 분류되는 원내 인사들은 대부분이 비교적 목소리가 작은 '초선 비례'라는 점도 친윤계가 이들을 위협적으로 느끼지 않는 지점입니다.
반면, 친한계도 "존버하면 이긴다"고들 말합니다. 한 친한계 의원은 "한 대표에게는 충분한 시간이 있다"면서 "윤 대통령의 남은 임기가 짧아지고, 다음 선거가 다가올수록 한 대표에게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지금은 '존버'의 시간"이라고 말했습니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국민의힘 내부 동력은 점점 더 떨어지고 있습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분당, 민주당 등 야권은 탄핵으로 가고 있다"면서 "더 이상 악화할 수도 없는 최악의 상황이다 보니 의원들도 '각개 전투'로 돌아서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한 국민의힘 의원은 "이런저런 당의 문제에 목소리를 내다보니 깨달은 게, 이대로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것이었다"면서 "나는 그냥 내 일만 하자, 정책에만 목숨을 걸 것"이라는 결심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됩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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