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에어컨 끄기보다 공장 멈추란 정부

입력 2024-10-25 17:49   수정 2024-10-26 00:39

“전기요금 올린다고 24시간 3교대로 돌아가는 공장을 점심에만 쉬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정부가 ‘기록적인 무더위 탓에 가정은 에어컨을 끌 수 없지만 기업은 전기수요 피크시간대를 피해 공장을 가동할 수 있다’고 설명하자 한 기업인은 이렇게 반문했다. 한국전력이 가정용 전기요금은 동결하고, 산업용 전기요금만 올리기로 결정한 지난 23일의 일이다.

정부는 작년 11월에도 대기업용 전기요금만 올리고, 중소기업과 민간용 전기요금은 동결했다. 정부는 기업에만 전기료 부담을 지우는 이유로 가격신호 회복을 든다. 전기요금이 오르면 기업은 요금이 비싼 낮 시간대에는 설비를 멈췄다가 요금이 싸지는 심야에 가동할 수 있는 반면 일반 가정은 전기요금이 오른다고 에어컨을 덜 쓰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 논리대로라면 작년 11월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이후 산업용 전기 판매량은 줄었어야 한다. 하지만 산업용 전기 판매량은 매달 늘기만 했다. 수출이 사상 최고 실적을 이어가는 때 기업들이야말로 전기요금이 올랐다고 낮 시간대에 공장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전기사업법은 원가에 적정한 이윤을 더해 전기요금을 결정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윤석열 정부도 전기사업법의 원가주의를 반드시 지키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산업용과 일반용 전기요금 모두 여전히 원가에 미치지 못한다. 원가주의도 지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격신호에 따른 수요 변화를 고려해 요금을 결정했다는 정부의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11월 정부가 산업용 전기요금만 인상한 결과 산업용과 일반용 전기 판매단가는 역전됐다. 대형 설비를 가동하는 기업은 발전소에서 끌어온 고압 전기를 그대로 받아 쓸 수 있다. 반면 일반 가정용 전기는 고압 전기를 저압으로 변환해서 공급한다. 송·배전 비용이 더 드는 만큼 일반용이 산업용 전기요금보다 비싼 게 시장 원리다. 미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h당 110원 정도로 가정용(222원)의 절반이다.

이번 전기요금 인상이 전체 전기 소비자의 98%를 차지하는 국민의 반발을 의식해 1.7%인 기업을 희생시켰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매년 여름 서울 명동 같은 번화가에서는 문을 열어놓고 장사하는 개문냉방으로 가게 입구와 뚝 떨어진 곳에까지 냉기가 전해지는 낭비가 반복된다. 우리 사회 전반에 전기요금의 가격신호가 작동한다면 진작에 사라졌을 행태다. 개문냉방을 없애는 것과 공장을 잠깐 멈추게 하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쉬울까. 정부가 강조하는 가격신호를 회복하고, 정부가 약속한 원가주의를 지키기 위해 전기요금 부담은 기업과 민간이 함께 지는 게 상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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