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 박세은(35)은 올림픽으로 치면 금메달리스트다. 이력서에 더 좋은 것을 써넣을 수 없는 최정상의 위치. 한국의 국립발레단에 잠시 몸담았던 박세은은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준단원으로 입단해 군무부터 5단계를 차근차근 밟아올라가 3년 전 에투알이 됐다. 파리에서 그는 오데뜨 공주(백조의 호수), 지젤(지젤) 키트리(돈키호테), 마농(마농), 니키아(라 바야데르) 등 다양한 주역으로 빛났다.
박세은은 오는 30일부터 11월 3일까지 공연하는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에서 또 한번 니키아가 된다. 상대역인 솔로르는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의 수석무용수 김기민(32)이 분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은 무용계의 최고상인 브누아 드 라 당스 수상자, 실력 하나로 세계적 발레단에 입단해 세계를 제패한 국내파라는 공통점을 가졌다. 무대를 일주일 앞둔 지난 25일, 박세은을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 사옥에서 만났다.
"지금까지 했던 안무 버전과는 다른 <라 바야데르>를 익히고 있어요. 안무가 유리그리가로비치는 기존 볼쇼이 발레단 안무를 국립발레단을 위해 수정했어요. 무대 위 동선이나 편곡된 음악의 차이 덕분에 새롭고 설레는 기분이에요. 강수진 단장님의 코칭도 받고, 단원들과 의견도 활발히 나눕니다."
<라 바야데르> 작곡가 루드비히 밍쿠스의 웅장하고 미려한 음악은 무용수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박세은도 인터뷰 도중 <라 바야데르>의 음악을 머릿 속으로 그려보더니 오른팔을 하늘로 들어올리며 말을 이어갔다. 그는 "음악을 생각하면 무언가 몸에서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쳐 오른다"며 "작곡가의 악상을 상상하고 수많은 동작들이 머릿 속에 그려진다"고 했다.
박세은에게 니키아는 어려운 캐릭터였다. 니키아는 신을 섬기는 무희지만 사랑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 영적인 기운을 가진 인물이기도 해서 박세은이 니키아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니키아는 미천한 신분임에도 사랑을 위해서 공주 감자티와 대적하는 강인함을 가졌어요. 그런 모습을 좀 더 드러내보이고 싶어요. 러시아에서 탄생한 작품이지만, 제가 보여드릴 니키아는 아마도 프랑스 발레에 더 가깝지 않을까요(웃음)."
박세은은 14년간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생활하며 그는 자신을 완전히 바꾸는 경험을 두 번 했다.
첫번째는 오랜 시간 체득했던 러시아식 발레와의 작별이었다. 박세은은 "한국에서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학교 교습법을 토대로 발레를 배웠는데, 프랑스의 발레는 전혀 달랐다"고 회상했다. 화려함, 기술 등이 러시아 발레의 구성 요소라면 프랑스 발레를 이루는 것들은 대척점에 있었다고. "자연스러움, 기품, 감정 표현. 이 세 가지 요소가 어우러졌을 때 나타나는게 프랑스 발레의 정수에요. 말로 표현하긴 어렵죠, 하지만 보면 알아요."
두번째는 출산. 박세은은 임신 3개월까지 무대에 섰고 출산 뒤 6개월 만에 무대로 돌아왔다. 초인이라는 별명이 붙을만 하다. 하지만 달라진 몸을 마주하고 달래가며 춤을 춰야하는 건 자신의 몫이었다. "(임신과 출산으로) 팽팽했던 근육과 관절이 느슨해지고 골반도 커졌어요. 점프를 할 때 자궁이 밑으로 빠지는 것 같은 느낌도 받았죠.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경험해보고 나니 춤을 좀 더 집중력있게 추게 됐어요. 엉망이 된 몸을 다시 세우면서 내가 모르던 나의 동작도 발견하면서 흥미롭기도 했고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신을 통째로 바꿔야했던 두 번의 경험을 통해 그의 춤은 깊어지고 즐거워졌다. "많은 동료들이 물어요. 왜 출산 후에 제 춤이 더 편안해보이는지를요. 오늘 연습을 하다 그 답을 찾았어요. 제가 '(신체적으로) 바닥까지 가봤는데, 뭐 어때. 더 해보자, 더 즐기자'는 생각을 갖고 있더라고요."
이날 박세은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수여하는 젊은 예술가 상도 받았다. "발레라는 게 워낙 어렸을 때부터 프로 무대에 서도록 훈련받기에 제가 젊다고 생각하지 못했는데요. 오늘 다양한 예술 분야의 수상자들과 만나면서 '나는 아직 젊구나, 할 일이 더 많겠다'는 긍정적 에너지를 받고 왔어요." 발레에 대한 의미를 묻는 질문에 대답이 매번 바뀐다는 박세은. 종래엔 어떤 예술가로 남고 싶을까."예전에는 오늘 더 연습해서 내일 더 잘하는 무용수가 되고 싶었고, 항상 미래를 봤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냥 오늘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요. 최선의 노력으로 얻은 경험을 발레를 통해 나누는, 그런 예술가가 되고 싶어요."
이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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