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가 오후 2시30분을 가리키자, 흰색과 빨간색 옷을 입은 도요타의 경주용차 ‘GR 야리스 랠리 1 하이브리드’가 트랙에 올랐다. 도요타 하이브리드 기술의 결정체로 불리는 이 차는 굉음을 내며 순식간에 트랙을 수십 바퀴 돌았다. 타이어 타는 냄새와 흰 연기가 가실 무렵 운전석 문이 열렸다. 전문 레이서 못지않은 드리프트 실력을 보여준 운전자는 세계 1위 자동차업체인 도요타의 수장 도요다 아키오 회장. 보조석에서 내린 이는 글로벌 ‘넘버3’인 현대자동차그룹의 정의선 회장이었다.
27일 경기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열린 ‘현대 N×도요타 가주 레이싱 페스티벌’은 이렇게 시작했다. 전광판에 뜬 ‘경쟁을 넘어 열정으로 하나 되다’란 문구처럼 두 사람은 “미래 모빌리티 시장을 같이 열자”며 의기투합했다.
정 회장과 도요다 회장은 이날 오전 일찍 현장을 찾았다. 그러곤 자사 부스는 물론 상대방 부스도 방문해 선수들을 격려했다. 도요다 회장은 현대차 부스에서 “오늘만큼은 경쟁자가 아니라 팬”이라고 말했다. 행사가 끝날 무렵 정 회장과 도요다 회장은 직접 선두에서 각각 아이오닉 5 N 드리프트 스펙, GR 야리스 랠리 1 하이브리드카를 운전하며 퍼레이드 랩을 이끌었다.
두 회사는 글로벌 기업들로 구성된 수소위원회 핵심 멤버로 활동하며, 수소 생태계 구축에 손발을 맞추고 있다. 수소는 생산, 운반, 저장, 충전 시스템 구축 등 밸류체인에 대한 ‘모범답안’이 없는 데다 실제 구현하려면 엄청난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혼자 하기엔 버거울 수밖에 없다.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에 부담을 느끼는 사이, 올 상반기 수소차 판매량(5621대)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1%나 줄어드는 등 시장도 위축되고 있다. 하지만 두 회사는 이날 수소 콘셉트카를 대거 선보이며 수소차 개발을 계속할 뜻을 내비쳤다.
로보틱스 분야에서는 현대차 자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와 도요타리서치연구소가 전면에 나선다. 두 회사는 함께 개발하기로 한 인공지능(AI) 기반 휴머노이드를 자동차 공장에 투입해 생산단가를 끌어내리는 동시에 불량률도 잡기로 했다. 현대차는 수년 내에 보스턴다이내믹스 로봇을 공장에 배치할 계획이다. 이번 협업을 계기로 이 로봇이 도요타 공장에 투입될 가능성이 생겼다는 관측도 나온다. 휴머노이드 개발 과정에서 얻은 각종 기술을 현대차와 도요타 자동차에 접목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세계 최고 자동차기업들의 만남이란 점에서 상당한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도요타그룹은 올 상반기에 516만 대를 판매해 세계 1위 자리를 지켰고, 현대차그룹도 362만 대로 3위를 차지했다. 수익성 측면에서도 두 회사 모두 올 상반기 업계 최고 수준인 10% 넘는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용인=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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