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성악가들의 겨울나그네에 흠뻑 빠져든 가을

입력 2024-10-28 17:24   수정 2024-10-29 00:25

독일 가곡 리트를 부르는 가수는 피아노 한 대의 반주에 의지해 공연 전체를 혼자서 책임진다. 그들은 시와 문학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바탕으로 오랜 수련을 거친 뒤 무대에 오른다. 한편의 리트 공연에서 인간 내면의 깊숙한 감정을 맛볼 수 있는 이유다.

지난주는 리트 애호가들을 설레게 한 시간이었다. 세계적 리트 가수들이 내한 공연을 했기 때문이다. 영국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60)는 지난 2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독일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64)는 26일 경기 성남아트센터에서 공히 ‘겨울나그네(Winterreise)’를 노래했다.

겨울나그네는 독일 시인 빌헬름 뮐러(1794~1827)의 시에 오스트리아 작곡가 슈베르트가 음악을 쓴 24곡의 연가곡이다. 첫 곡 ‘안녕히’를 시작으로 실연한 청년의 겨울 여행을 시와 음악으로 그려낸다. 제5곡 ‘보리수’와 제11곡 ‘봄꿈’을 제외하고는 모두 단조로 쓰여 적막하고 고독한 느낌을 준다.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는 600석짜리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의 울림을 끌어내듯 정확한 음정의 공명만으로 맛깔스러우면서도 아픈 노래를 들려줬다. 그는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안녕히’로 겨울여행을 시작했다. 제2곡에서는 사람이 아니라 마치 악기 같았다. 포르테로 노래할 때는 핸드벨 같았고, 피아노를 들려줄 때는 클라리넷 같았다.

제3곡에서는 피아니스트 랄프 고토니의 전주가 객석을 숨죽이게 만들었다. 슈베르트의 가곡은 ‘노래와 피아노의 이중주’라고 부른다. 이전 예술가곡들과 달리 피아노와 성악을 동등한 위치에 두고 음악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제5곡 ‘보리수’의 보스트리지는 전주가 시작되자 무대 오른편을 보며 먼 산을 보듯 노래하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70분간 겨울나그네를 듣는 객석에서는 눈물을 닦는 관객이 보였다. 관객과 연주자가 호흡하며 흘러간 시(詩)와 음(音)의 시간이었다.

성남아트센터에서 노래한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는 아쉬케나지, 브렌델뿐만 아니라 조성진과도 음반을 발표해 국내에도 많은 팬을 둔 성악가다. 그는 한국에서 리트 데뷔 무대를 갖는 피아니스트 마리아 조앙 피레스(80·포르투갈)를 배려하듯 먼저 무대로 올려보냈다.

1100석의 콘서트홀에서 진행된 공연은 리트 전문 바리톤 괴르네의 진가를 볼 수 있는 무대였다. 괴르네는 리트 분야에서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의 계보를 잇는 독일의 바리톤이다. 리트 무대에서 상대적으로 경험이 많은 괴르네는 선배 음악가 피레스를 배려하듯 노래를 이어갔다. 객석을 보며 노래하다가 피아노 건반 앞에 앉은 피레스와 호흡하기 위해 몸을 돌려 소리를 들려주듯 노래했다.

이날 공연에서 건반 앞에 앉은 피레스가 17번 곡 ‘마을에서’부터 마지막 24번째 곡 ‘거리의 악사’까지 적극적인 연주로 괴르네의 낭독에 개입한 것은 신선했다. 일반적인 리트 무대에서 피아노는 페달을 많이 쓰지 않고 가수들과 볼륨을 맞춰가며 연주를 함께하지만 피아노라는 악기의 음량 조절에 정통한 피레스는 깊이 있는 울림을 만들기 위한 과감하고 적극적인 페달링으로 시원한 볼륨을 들려줬다. 피레스의 연주로 듣는 겨울나그네의 전주와 후주는 관객의 귀를 즐겁게 한 포인트였다. 피레스와 괴르네의 겨울나그네는 둘의 새로운 컬래버 무대를 기대하기에 충분했다.

조동균 기자 chodog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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