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편집 기술 소송전서 승기잡은 툴젠

입력 2024-10-28 17:24   수정 2024-10-29 01:09

유전자 치료제 개발사 툴젠이 3세대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의 글로벌 특허 소송에서 유리한 입지에 올라섰다. 크리스퍼의 원천 기술을 개발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들이 유럽 특허를 철회하면서다. 향후 툴젠은 한국 최초이자 유일한 세계적 원천기술을 보유한 바이오 회사로서 입지를 더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크리스퍼는 살아 있는 세포의 특정 유전 정보를 선택적으로 전달하고 편집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유전병 및 난치질환 치료, 동·식물 품종 개량 등에 활용할 수 있다. 지난해 세계 최초의 크리스퍼 유전자 치료제 카스게비(겸상적혈구빈혈증 치료제)도 탄생했다. 글로벌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시장 규모는 2022년 3조5000억원에서 2032년 20조4000억원으로 10년 만에 여섯 배가량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툴젠, 유럽에서 노벨상 그룹 꺾어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인 만큼 크리스퍼 원천 특허를 두고 치열한 소송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 툴젠과 CVC그룹(미국 UC버클리-오스트리아 빈대), 브로드연구소(미국 MIT-하버드대) 등 세 곳이 그 주인공이다. 소송의 쟁점은 의약품에 활용 가능한 ‘진핵세포’에서 사용할 수 있는 크리스퍼를 누가 먼저 발명했는지를 가리는 것이다. 이 소송의 승자가 될 경우 전 세계에서 개발되는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과 관련한 모든 제품으로부터 막대한 로열티 수입을 얻을 수 있다.

유럽특허청(EPO)은 그동안 ‘선출원주의’에 따라 CVC그룹에 유리한 판결을 해왔다. 2012년 5월 CVC그룹, 2012년 10월 툴젠, 2012년 12월 브로드연구소가 각각 크리스퍼의 특허 출원을 진행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2020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연구자들이 속한 CVC그룹은 유럽에서 크리스퍼 특허 두 건을 철회했다. EPO가 예비심결에서 CVC그룹에 불리한 의견을 내면서다. EPO는 CVC그룹이 주장하는 진핵세포에 대한 권리가 타당하지 않고 상업적으로 가치가 낮은 기술인 ‘원핵세포’만 인정했다. 이로써 툴젠이 유럽에서 가장 유리한 입지에 올라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EPO가 오랫동안 일방적으로 CVC그룹 손을 들어줘 툴젠과 브로드가 어려움을 겪었다”며 “브로드보다 출원일이 더 빠른 툴젠이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연내 美 판결에서 승자 윤곽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에서도 특허권을 둘러싼 소송전이 치열한 가운데 툴젠이 일찌감치 결승전에 올라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미국 특허심판원(PTAB)은 툴젠을 시니어파티(우선순위 권리자), CVC그룹과 브로드연구소를 주니어파티(후순위)로 분류했다. 보통 PTAB 특허 소송에서 시니어파티의 승률은 약 75%다. 주니어파티인 CVC그룹과 브로드연구소는 미국 고등법원에서 ‘준결승’ 소송전을 진행 중이다.

업계는 연내 미국 고법의 판결에 따라 3사 간 합의로 소송전이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했다. 특허 소송에서 최종 승소하더라도 연장할 수 있는 기간은 최대 5년에 불과해 실익이 낮기 때문이다. 이미 3사는 특허 소송으로 10년 이상을 흘려보냈고 크리스퍼 특허 만료일은 2033년이다.

업계에선 툴젠이 3사 간 최종 특허 합의에 이르면 매년 최소 700억원 이상의 매출이 발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툴젠 창업주인 김진수 고문은 “특허 분쟁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더라도 이는 툴젠이 글로벌 회사로 발돋움하기 위한 시작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림 기자 youfore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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