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주재자인 장손의 동의 없이 조상 묘를 파헤쳐 유골을 화장해 납골당에 안치한 행위에 대해 형법상 유골손괴죄를 적용해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는 분묘발굴 및 분묘발굴유골손괴 혐의로 기소된 A씨와 B씨에 대해 분묘발굴 혐의만 유죄로 인정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유골에 대한 피고인들의 '손괴'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본 원심의 판단에는 형법 제161조의 '유골손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모자 관계인 A씨와 B씨는 2020년 4월 충남 천안에 있는 A씨 소유의 임야를 다른 사람에게 매도하기 위해 이 땅에 있던 B씨의 증조부모, 조부모, 큰아버지 등의 분묘를 포크레인을 이용해 발굴하고, 장례업체 직원들에게 수습된 유골을 추모공원에서 화장한 후 안치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분묘를 관리하며 제사를 주재해온 큰아버지의 아들 C씨 등의 동의를 받지 않은 게 문제가 됐다. 결국 검찰은 A씨와 B씨를 형법 제161조 유골손괴죄 등을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피고 측은 재판 과정에서 "이 사건 분묘들은 피고인 A의 남편이자 피고인 B의 아버지가 수년 간 관리해왔으므로 장손인 C씨 등에게 제사주재권이 인정된다고 볼 수 없다"며 "종교적, 관습적 양속(良俗)에 따른 존숭의 예를 갖춰 화장했으므로 이는 유골손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해 피고들에게 각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분묘발굴 혐의는 유죄로 인정했지만 1심과 달리 유골손괴 혐의는 무죄로 판단하고, 피고인들에게 1심보다 가벼운 각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건 분묘들에 매장된 망인들의 사망일시는 (제사주재자는 우선적으로 망인의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협의에 의해 정하도록 한) 2008년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 이전임이 명백하다"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종손 또는 망인의 장남, 장손인 C씨가 재사주재자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고인들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C씨 등이 망인들의 제사를 지내왔던 것으로 보이는바, B씨의 부친이 이 사건 분묘들의 벌초 등 관리를 주로 했다는 사정만으로 C씨가 제사주재자가 아니라고 보기 어렵다"며 제사주재자에 관한 1심 판단을 유지했다.
다만 유골손괴 부분에 대해서는 "형법 제161조에서 의미하는 유골손괴에서 의미하는 '손괴'는 유골의 효용을 해해 사실상으로나 감정상으로 유골의 본래 사용 목적에 제공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라며 "현행법상 적법한 장사의 방법인 화장 절차에 따라 종교적, 관습적 예를 갖춰 납골당에 유골들을 안치함으로써 제사와 공양의 대상으로 제공했다면, 유골을 본래의 사용 목적에 제공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유골손괴 부분에 대한 판단을 다시 뒤집었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08년 '사자의 유체·유골에 대한 매장·관리·제사·공양 등은 그 제사주재자를 비롯한 유족들의 사자에 대한 경애·추모 등 감정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고, 사자의 유체·유골은 제사주재자에게 승계되는 것이므로, 그에 관한 관리 및 처분은 종국적으로 제사주재자의 의사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판례를 내놓았다.
상고심 재판부는 이 같은 법리에 비춰 "제사주재자 또는 그로부터 정당하게 승낙을 얻은 자의 동의 없이 함부로 유골의 물리적 형상을 변경하는 등으로 훼손하는 것은 사자에 대한 경애·추모 등 사회적 풍속으로서의 종교적 감정 또는 종교적 평온을 해치는 '손괴'에 해당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사건 분묘들에 매장된 사자들에 대한 제사주재자로서 그 분묘 및 유골들의 관리처분권자인 C 씨의 동의 없이 피고인들이 이 사건 유골을 화장장에서 분쇄해 훼손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이와 달리 판단한 원심판결을 파기하도록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사건은 법리를 선언한 선례를 찾기 어려운 사안"이라며 "범용성 있는 법리를 선언했다고 평가하는 것은 무리이기는 하나, 범죄 성립 여부를 명확히 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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