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16일 개봉한 ‘보통의 가족’은 손익분기점 150만 명을 턱없이 밑돈 50만 명에 그쳤고, 17일부터 영화관에 등장한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의 관객은 10만 명을 넘지 못했다. 한국 영화는 ‘기생충’ 열풍의 시작점이었던 칸 영화제에서도 힘을 잃어가고 있다.
그나마 희소식이 있다면 재기 발랄하고 수려한 독립영화들이 꾸준히 극장을 찾아준다는 사실이다. 지난달 11일부터 상영되는 ‘장손’이 그런 작품 중 하나다. ‘장손’은 오정민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 한 달여 동안 2만9000여 명이 작품을 즐겼다.
‘장손’은 가부장을 목숨처럼 여기는 가문에서 장손으로 겪어야 하는 번뇌와 시름을 코믹하면서도 서정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가업으로 두부 공장을 운영하는 가족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3대의 대가족은 조상의 제삿날에 모이게 되고, (어느 집이나 그렇듯) 가족들은 공장의 운영과 상속을 둘러싸고 ‘박 터지게’ 싸우기 시작한다. 전투의 키를 쥐고 있는 장손이자 영화감독을 꿈꾸는 ‘성진’(강승호 분)이 두부 공장을 물려받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할아버지는 분노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손숙 분)가 돌아가시고 장례가 치러지는 내내 (어느 집이나 그렇듯) 전투가 벌어진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코미디 상황은 한번 웃고 마는 설정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야기의 진행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가족 구성원 각자의 배경과 서사는 상황극 혹은 소동극의 (의도된) 경박함과 유쾌함을 초월하거나 전복하는 비극이자, 가족 전체의 역사다.
‘장손’은 복합적인 영화다. 이 작은 패키지 안에 가부장제에 대한 풍자와 군부 독재 시대의 상흔이, 그리고 세대교체의 아이러니와 가족 로맨스가 조화롭게 혼재한다면, 너무나도 매력적인 프로젝트가 아닌가.
다시 영화산업의 이야기로 돌아간다면 총제작비 6억원의 ‘장손’은 손익분기점 5만 명을 돌파해야 한다. 아직 2만 명의 관객을 더 만나야 하지만 그 길이 험난해 보이지 않은 것은 이 작은 영화가 보여준 저력과 꿋꿋함 때문이다. 하락세의 한국 영화가 초심을 필요로 한다면 ‘장손’은 그 답 중 하나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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