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곡에 압도돼 버린 스토리와 연출

입력 2024-10-30 18:18   수정 2024-10-31 00:43

‘붉은 노을’ ‘옛사랑’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1980~1990년대를 경험하지 않았어도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흥얼거릴 수 있는 이문세의 대표곡들이다. 세월이 지나도 제목만 들으면 머릿속에서 멜로디가 절로 떠오르는 이 곡들을 만든 사람은 바로 이영훈 작곡가. ‘광화문연가’는 그가 생전 남긴 명곡을 엮어 이야기로 풀어낸 ‘주크박스’ 스타일 뮤지컬이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노래에 어울리게 이야기 역시 과거를 회상하는 액자 방식으로 흘러간다. 주인공은 죽음을 단 1분 앞둔 명우. 응급실에 누워 있던 그는 ‘기억의 전시관’에서 눈을 뜬다. 이곳은 사람의 인연을 관장하는 월화가 사람이 죽기 전 추억을 되감아 주는 장소다. 명우는 첫사랑 수아와의 꼬여버린 사랑을 풀기 위해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

음악은 부족함이 없다. ‘소녀’ ‘그녀의 웃음소리뿐’ ‘옛사랑’ 등 이문세와 이영훈의 대표곡들이 아낌없이 담겼다. 주인공 명우로 분한 윤도현의 담백하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옛날 발라드와 어우러져 관객 각자의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매력이 있다. 월하 역할을 맡은 차지연은 파워풀한 목소리뿐 아니라 발랄한 코미디 연기로 장면마다 시선을 사로잡는다.

음악과 출연진이 지닌 힘에 비해 작품 자체의 매력은 부족하다. 죽기 직전에 꼬인 인연을 풀어준다는 발상은 흥미롭다. 하지만 두 연인이 극적으로 사랑에 빠졌다가 헤어지는 이야기가 다소 신파적으로 흘러간다. 대사도 어색하고 딱딱하게 느껴져 몰입을 방해한다. 대사에서 음악으로 전환하는 과정도 때로 부드럽지 않고 뜬금없다. 전반적으로 음악을 이야기에 녹여내기보다 이야기가 음악을 담기 위해 맞춰졌다는 느낌이 든다.

주요 관객층을 위해 시대적 배경을 끌어들인 것은 어쩔 수 없었겠지만 무대 연출 방식이 심심하다. 1980~1990년대의 막걸리집, 나이트클럽, 광화문 광장 등 배경을 하얗게 칠한 무대 위에 영상으로 표현해 생동감이 없다. 단출한 무대를 앙상블과 춤, 시위 장면의 액션으로 채우지만 오히려 산만하다.

가을이 깊어지는 계절에 향수를 일으키는 발라드 음악을 진하게 즐길 수 있는 뮤지컬. 명곡들이 지닌 매력에 비해 이야기와 무대의 완성도는 부족하다. 1980~1990년대를 추억하는 관객이라면 이영훈 작곡가의 음악이 더욱 진하게 와닿을 수 있겠다. 공연은 내년 1월 5일까지 서울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열린다.

구교범 기자 gugyobe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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