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이 최근 바이오 기업 170곳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는 이런 현실을 그대로 보여줬다. ‘자금 사정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답변이 92.4%에 달했다. ‘원활하다’는 곳은 5.9%에 그쳤다.
오랜 돈가뭄 여파다. 벤처캐피털의 바이오 투자액은 2021년을 기점으로 하강 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여러 요인이 겹쳤다. 글로벌 임상 실패, 주가 조작 등 굵직한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투자심리를 얼어붙게 했다. 여기에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의료대란이 더해졌다. 신약벤처의 임상이 늦춰지고 의료기기업체들은 매출에 타격을 입었다.
상장사라고 무사하진 않다. 상장 유지 조건을 충족하는 게 간단하지 않아서다. 연매출 30억원 미만이거나 자기자본의 50%를 웃도는 법인세차감전계속사업손실(법차손)이 3년 동안 2회를 넘으면 관리종목에 지정된다. 유예 기간 종료를 앞둔 기술특례상장 기업들은 사투를 벌이고 있다. 화장품·건강기능식품 기업을 인수하거나 펫케어 사업, 부동산 임대사업에 진출하기도 한다.
사업 다각화가 꼭 나쁠 건 없다. 상장 유지 조건을 충족하는 수단이 될 수 있고, 신약 개발 자금을 댈 캐시카우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하지만 연구개발 전문 기업이 화장품, 건기식 마케팅까지 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법차손 요건은 신약 벤처의 R&D까지 위축시키고 있다. 수백억, 수천억원이 소요되는 신약 임상을 하다 보면 법차손은 눈덩이처럼 늘어날 수밖에 없다. 자기자본을 늘리면 된다지만 이마저도 현재로선 여의치 않다. 벤처캐피털 등 기관투자가의 투자 기능이 사실상 마비 상태여서다.
좀비 상장기업은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도 퇴출하는 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렇더라도 기술력과 판로를 확보한 유망 기업까지 막무가내로 걷어차는 건 문제다. 세계 제약 강자인 제넨텍, 길리어드 등은 신약 파이프라인을 자산으로 오랜 기간 실적 없이도 나스닥에서 퇴출되지 않고 성장한 바이오테크다. 증시가 단순한 자금 조달 창구가 아니라 산업 발전의 버팀목이었다는 얘기다. 미국이 제약·바이오산업의 최강국으로 군림하는 데 원동력이 된 셈이다. 출범 28년 된 코스닥시장은 어떤가. 이제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가 그 답을 내놓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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