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600명' 시골을 첨단 스마트시티로…지방소멸사회 해법 찾다

입력 2024-10-30 17:58   수정 2024-11-07 16:25

일본 도쿄에서 쓰쿠바 급행열차를 타고 30분 가면 나오는 지바현 가시와노하. 세계 최초의 ‘마치즈쿠리’(마을 만들기)형 스마트시티로 불리는 이곳은 2007년 주민 600여 명에 불과한 소멸 위기의 작은 마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인구 1만3000여 명의 어엿한 도시로 성장했다.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첨단 테크로 무장한 스마트시티를 일궈 인구가 무려 20배가량 증가했다.

매일 수많은 헬스케어 데이터가 쏟아지자 도쿄대, 지바대, 국립암연구센터는 2019년 가시와노하에 ‘라이프 사이언스 연구개발(R&D)센터’를 개소했다. 작년엔 일본의 자율주행 스타트업 튜링이 둥지를 틀었다. 내년엔 자동화 기기 부품 제조사인 SMC가 연구 거점을 열기로 했다. 가시와노하 스마트시티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후미히코 세타 도쿄대 교수는 “스마트시티 성공을 위한 관건은 기술만이 아니다”며 “시민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런 점에서 스마트시티가 초고령화 사회 도시 재생을 위한 대안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운전자 부족에 자율주행 박차
지난달 가시와노하를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광경은 자율주행버스를 기다리는 마을 주민의 행렬이었다. 가시와노하 캠퍼스역에서 도쿄대 가시와캠퍼스까지 매일 2.6㎞를 시속 40㎞로 운행한다. 스마트시티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미쓰이부동산의 나카노 다쓰히코 프로젝트 리더는 “내년에는 운전자 없는 레벨4 자율주행 실험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운전자 부족은 일본이 직면한 어려움 중 하나다. 일본버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민영 버스회사 127곳 가운데 80%가 노선을 감축했다. 미에현에 있는 인구 4만5000명의 다키군은 아예 자율주행차량만 운행하는 도시로 변모 중이다.

가시와노하 등 ‘주민참여형 스마트시티’가 공을 들이는 또 다른 분야는 헬스케어 데이터 축적이다. 가시와노하 중심에 있는 마을건강연구소 ‘아시타’는 노인들에게 스마트폰을 통한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주민이 자신의 식단을 사진으로 찍어 ‘칼로마마플러스’ 앱에 올리면 인공지능(AI) 영양사가 재료를 분석해 건강한 식단을 조언해준다. ‘비트핏’을 통해서는 750가지 이상의 운동 프로그램을 따라 할 수 있고, ‘메디컬노트’ 앱으로 원격으로 의사와 상담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실버 데이터’의 거대 저장소인 셈이다.
스마트폰으로 의사 7만 명 만나
다키군은 2021년부터 인근 20개 촌락을 대상으로 원격진료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역화폐 결제, 건강관리, 원격의료 서비스를 통합한 앱 ‘비손패스포트’를 이용하면 원격의료 전문회사 MRT와 계약을 맺은 전국 의사 7만 명을 만날 수 있다. 히데키 후쿠이 타키정 디지털전략실장은 “13명으로 부족한 의료진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데이터가 쌓이면서 헬스케어 관련 스타트업이 주민참여형 스마트시티로 몰려들고 있다.

첨단 정보기술(IT)에 뒤처졌다고 평가받는 ‘팩스의 나라’ 일본이 스마트시티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인구 고령화 덕분이다. 건강·교통 서비스 수요가 늘어나는 반면 노동력은 줄어들고 있어서다. 취재에 동행한 박윤미 서울대 건설공학부 교수는 “그동안 수차례 등장한 스마트시티의 가장 큰 문제는 기술이 사람을 압도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민 참여로 개인정보 논란 없애
스마트시티 개발 초기 가시와노하 주민들의 반응은 무관심에 가까웠다. 미쓰이부동산은 간극을 좁히기 위해 2006년 기업과 학계, 주민을 연결하는 거점인 어반디자인센터가시와노하(UDCK)를 세웠다. UDCK는 매달 10~20명의 주민과 간담회를 열고 어떤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지 논의했다. 핵심 데이터 활용 방안을 논의하거나 전자시계 모양 디지털 의료기기를 보급할 때는 ‘데이터 윤리 심사회’를 열어 주민 의견을 반영했다. 아쓰시 하사키 UDCK 디렉터는 “상상도 못 한 아이디어가 많이 나와서 놀랐다”며 “주민들이 직접 의견을 내면서 개인정보 제공에 대한 거부감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이는 빅테크 기술을 등에 업은 스마트시티들이 최근 고전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알파벳(구글 모회사)의 지원을 받은 사이드워크랩스가 캐나다 퀘이사이드에 건설하려던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는 2020년 첫 삽을 뜬 지 2년 반 만에 개인정보 침해에 대한 주민 반발로 좌초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제너럴모터스(GM)의 로보택시 ‘크루즈’, 알파벳의 ‘웨이모’가 보행자 충돌 사고, 잦은 정차로 인한 교통 체증 등으로 주민들의 반발을 샀다.

미쓰이부동산은 가시와노하를 모델로 스마트시티 개발 사업을 수출할 방침이다. 최근 대만 신베이시, 필리핀 카비테시, 스리랑카, 코트디부아르, 탄자니아 등의 스마트시티 담당자들이 가시와노하를 방문해 도입 가능성을 타진했다.

가시와노하·다키=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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