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살 다 돼 '몸값 수십억'…"90년 기다렸다"는 스타 사연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입력 2024-11-09 00:12   수정 2024-11-09 12:06



“계속 버스를 기다리면, 언젠가는 버스가 반드시 도착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거의 100년을 기다린 셈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버스가 왔네요.

2010년 쿠바 출신의 95세 화가 카르멘 에레라(1915~2022)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건 20대 후반이던 1940년대 초. 미국 뉴욕의 미술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회화를 공부한 그는 학교를 떠나자마자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시원찮았습니다. 돈을 주고 그의 그림을 산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에레라의 그림이 유행과 달랐던 데다, 그가 못 사는 나라에서 온 이민자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하지만 에레라는 꺾이지 않고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결국 성공은 찾아왔습니다. 마침내 그의 그림이 팔린 겁니다. 하지만 기다림은 길었습니다. 60여년이 흐른 2004년, 에레라가 89세 때의 일이었거든요.

이후 에레라는 세계적인 화가로 떠올랐습니다. 미국과 유럽 전역에서 전시가 열렸고,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테이트 모던 등 세계적인 현대미술관들이 앞다퉈 그의 작품을 사들였습니다. 수백만 원에 불과했던 그림 값은 2009년 수천만 원, 2019년에는 수십억원대로 뛰었고, 2016년 휘트니 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은 극찬을 받았습니다. 평론가들은 말했습니다. “그녀처럼 훌륭한 화가를 그토록 오랫동안 알아보지 못했던 건 부끄러운 일이다.” 이런 잠재력을 가진 예술가가 90년의 무명 생활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요. 오늘은 그녀처럼 뒤늦게 자신의 예술을 인정받은 화가 세 명의 이야기를 풀어 보겠습니다.
94년의 기다림 끝에 : 카르멘 에레라
에레라는 1915년 쿠바에서 태어났습니다. 미술과 건축에 관심이 많던 그는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다 영어 선생님으로 일하던 뉴욕 출신의 한 남성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결혼한 뒤 남편의 직장이 있는 뉴욕에 정착했습니다.



그리고 에레라는 화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합니다. 프랑스 파리의 한 전시회에서 만난 ‘기하학적 추상화’의 매력에 푹 빠진 게 계기였습니다. 기하학적 추상화란 선과 도형으로 가장 추상적이고 순수한 형태를 통해 그린 그림을 말합니다. 수학 공식이 때로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듯이, 완벽한 원이나 정사각형 같은 기하학적인 형태를 통해 순수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게 목표인 작품이지요. 에레라는 훗날 이렇게 말했습니다. “작품을 보자마자 바로 깨달았지요. 앞으로 나는 평생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될 것이라고.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질서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렇게 에레라의 전업 화가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그는 남편이 아침에 출근하면 집안일을 얼른 마친 뒤 저녁까지 그림을 그렸습니다. 남편도 에레라의 꿈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줬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습니다. 1년이 2년, 3년이 되고, 5년이 되고, 10년이 됐습니다. “저는 정말로 열심히 작업했고, 오랜 세월에 걸쳐 조금씩 저만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었어요.” 에레라의 작품이 계속 새로운 영역으로 발전하는 사이 쌓인 세월은 어느덧 수십 년, 이윽고 반세기가 됐습니다.



여전히 작품은 전혀 팔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에레라는 지치지 않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작은 방에서 검소하게 살았고, 완성된 캔버스는 둘둘 말아 옷장에 넣어 뒀습니다. 남편이 2000년에 세상을 떠난 뒤에도 작업은 계속됐습니다. “계속 그림을 그리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에레라가 94세 때인 2004년. 오랫동안 멈춰 있던 운명의 시계가 숨 가쁘게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작가들과 함께 참가한 뉴욕의 갤러리 전시에서 처음으로 그의 작품이 팔린 게 시작이었습니다. 순식간에 미술 비평가와 애호가들 사이에 ‘작품이 좋다’는 입소문이 났고, 에레라의 작품에 반한 미술품 컬렉터들은 앞다퉈 그림을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에레라의 작품이 주목을 받은 건 물론 예술적인 완성도가 높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에레라가 오랜 세월을 보냈다는 점이 작품에 위대함을 더한 것도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친 종교인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비록 우리가 그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이런 종교인들은 그 자신의 삶과 헌신을 통해 해당 종교에 대한 경외심과 존경심을 불러일으킵니다. ‘나는 그 종교를 믿지 않지만, 그 종교엔 뭔가 대단한 게 있긴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거지요. 한 인간이 뭔가에 온전히 자신의 삶을 바친다는 것. 이런 행동은 그 자체로 대상의 가치를 증명합니다.

에레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설령 보상받지 못할지라도 삶을 바칠 만한 가치가 자신의 그림에 있다는 사실을, 에레라는 한평생으로 증명했습니다. 화려하지 않은 작업을 하는 추상화가들은 이렇게 자신의 삶으로 작품의 진정성을 증명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후 그의 인기와 명성은 가파르게 상승했습니다. 영국 주간지 옵저버는 뒤늦게 평했습니다. “에레라를 발견한 건 10년에 한 번 있는 충격적인 사건이다. 이 훌륭한 작품을 우리가 어떻게 놓칠 수 있었을까?” 하지만 누구보다 더 놀란 건 에레라였습니다. 갑자기 유명해진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무도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신경 쓰지 않았어요. 제 작업을 사람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너무 오래 기다렸지요! 하지만 이제는 괜찮습니다. 아마 저는 시대를 약간 앞섰고, 그 대가를 치렀던 것 같아요. 하지만 나에겐 그저 그림을 그리는 일이 전부였습니다. 명성과 돈은 중요하지 않았어요.”

어쩌면 제가 오랫동안 인정받지 못하고 일할 수 있었던 게 다행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덕분에 수십 년 동안 혼자서 끊임없이 작품을 가다듬고 본질에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요. 다만 사람들이 알아봐 주는 건 기쁘네요. 저는 아무도 죽이지 않고도 뉴욕타임스 표지에 실렸습니다. 저에게 필요한 건 오직 시간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결국 저를 알아봤습니다. 그저 94년을 기다렸을 뿐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2022년, 에레라는 반세기 넘게 살았던 뉴욕의 자택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습니다. 그의 나이 106세였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붓끝 : 로이스 도드


사실 미술의 세계에서 이런 일이 아주 드문 건 아닙니다. 지금도 활발하게 작업 중인 미국의 97세 화가 로이스 도드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지난달 초 미국 뉴욕에서 크리스티가 연 경매 ‘전후에서 현재까지’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작품이 바로 도드의 작품이었습니다. 그가 1971년 그린 ‘리플렉션 오브 더 반’은 당초 추정가가 약 1억원 안팎에 불과했지만, 경합이 붙으면서 낙찰가는 5억원을 넘어섰습니다. 아트뉴스 등 주요 미술 전문지는 “마침내 도드의 작품이 진가를 인정받기 시작했다”고 썼습니다.

도드가 14세 때, 화목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던 그의 삶은 한 번 크게 흔들렸습니다. 어머니를 암으로 잃은 그해, 상선의 선장이던 아버지가 제2차 세계대전에 휘말려 목숨을 잃은 겁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도드에게는 그림 재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도드는 전액 장학금을 주는 뉴욕의 사립 단과대학인 쿠퍼 유니언에서 미술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1950년대부터 화가로 활동하며 일상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미술계는 그의 실력을 인정했습니다. 1971년부터 1992년까지 브루클린 칼리지와 스코히건 회화 조각 학교에서 그림을 가르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도드는 늘 대중적인 성공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남성 작가, 그리고 추상화가를 선호하던 당시 미술계 분위기에서 구상화를 그리는 여성 작가인 도드는 철저한 ‘아웃사이더’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도드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추상표현주의, 팝아트처럼 여러 유행이 지나갔습니다. 유행이나 주변 사람에게 영향을 아예 안 받을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그림은, 제가 인생에서 확신을 가진 유일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는 뭔가가 하나는 있어야 합니다. 제게는 그게 그림 그리는 일이었어요. 다른 사람은 저를 도울 수 없습니다. 저와 그림 뿐입니다. 삶에는 그렇게 홀로 해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알아주는 이가 없어도 도드는 70여년간 꾸준히 그리고 또 그렸습니다. “수만 년 전 원시인들이 그린 동굴 벽화를 보세요. 그리는 걸 멈출 수 없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도드는 자신이 본 세상을 그렸습니다. 거창할 건 없었습니다. 대표적인 게 창문 그림입니다. 집 안에서 밖을 바라본 창문, 눈이 내리는 날의 창문, 비 오는 날의 창문, 꽃이 피어있는 창문가의 풍경…. 도드는 언제나 평범한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이를 캔버스에 옮겼습니다.




마침내 미술계가 그에게 주목하기 시작한 건 90대에 들어선 2020년대부터입니다. 미국의 여러 주요 미술관들이 도드의 작업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도드는 별로 신경쓰지 않습니다. 지난해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도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던 일을 계속 할 뿐입니다. 무시당해도 괜찮아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덜 보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잖아요.
78세에 시작한 화가 : 그랜마 모제스
지금까지 소개해 드린 두 화가가 오랫동안 자신의 예술을 갈고 닦았다면, 안나 메리 로버트슨 모제스(1860~1961)는 조금 다릅니다. 78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늦깎이 예술가였거든요. 1860년 농부의 딸로 태어난 모제스는 열두 살 때 집을 떠나 근처 부잣집에서 가정부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족을 위해 돈을 벌기 위해서였습니다. 가정부 생활은 15년이나 계속됐습니다.



모제스에게도 꿈은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모제스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습니다. 모제스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제가 아주 조그맣던 시절, 아버지는 흰 종이를 한 장 사주시곤 했어요. 아버지는 우리가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저도 그랬고요. 종이를 살 돈으로 사탕을 살 수도 있었지만, 사탕보다 종이가 주는 즐거움은 오래 갔거든요.” 하지만 바쁜 생활 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꿈은 어느새 까맣게 잊혔습니다.

스물일곱 살 때 모제스는 같은 동네 청년과 결혼해 주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 시절 살림을 꾸려나가는 건 지금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모제스는 열 명의 아이를 낳았고, 그 중 다섯 명이 사고나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모제스는 늘 쾌활했습니다. 집 안에 그림을 그려 넣고, 가족과 친구를 위해 자수로 그림을 그려 선물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훌쩍 세월이 흘렀습니다. 모제스가 76세가 될 때까지요.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모제스는 여전히 건강하고 유쾌했습니다. 하지만 관절염이 생기면서 자수를 놓는 게 더 이상 어려운 상황이 됩니다. 모제스의 동생은 제안했습니다. “그림을 그려보는 건 어때? 자수보다 손가락은 덜 아플텐데.” 모제스의 그림은, 그렇게 사소한 계기로 시작됐습니다.




주제는 자신이 어릴 적 봤던 풍경. 눈 내리는 겨울 풍경, 단풍이 물든 가을 들판, 농부들의 추수 작업 등 미국 시골의 일상을 소박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냈습니다. 모제스는 “사람들이 그림을 보고 옛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전문적인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덕분에 오히려 작품은 꾸밈없고 순수한 데다 독특한 매력까지 갖출 수 있었습니다.

2년 뒤인 1938년, 우연히 모제스의 동네를 방문한 미술품 수집가가 동네 약국에서 모제스의 작품 10점을 발견하고 장당 5000원에 사들이면서 모제스의 성공 신화는 시작됐습니다. 입소문은 빠르게 퍼졌습니다. 이듬해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뉴욕의 무명 현대 미술가들’ 전시에 모제스의 그림 세 점이 나왔고, 다시 1년 뒤 모제스의 첫 개인전이 뉴욕의 갤러리에서 열렸습니다. 모제스의 나이 80세였습니다.




그리고 모제스는 급격히 유명해졌습니다. 언론은 모제스에게 ‘그랜마 모제스’(모제스 할머니)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미국의 명절마다 모제스의 그림이 그려진 카드들이 전국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갔습니다. 작품값도 확 뛰었습니다. 1949년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모제스에게 공로상을 수여했고, 1950년 모제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1961년 101세로 세상을 떠날 때,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이렇게 할머니를 추모했습니다. “미국인이 사랑하는 분이 떠났습니다. 모제스의 그림은 미국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신선함을 다시 찾아 줬습니다. 모든 미국인이 그녀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92세에 쓴 자서전에서 모제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는 행복하고 보람찬 하루를 보낸 것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만족스러워요. 저는 행복했고,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으며, 인생이 저에게 준 것들을 최대한 활용했습니다. 삶은 우리가 만드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늦은 때란 없다
세 사람의 성공은 늦은 나이에 찾아왔습니다. 건강하게 산 덕분에 꿈을 찾고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볼 때까지 그 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나이가 많다는 사실 그 자체도 분명 성공에 영향을 끼쳤을 겁니다. ‘100세 화가’라는 말은 그 자체로 강력하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뭔가를 사랑하고 열정을 쏟은 덕분에, 이들은 더 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었다고요.

헨리 올리버가 쓴 <세컨드 액트(Second Act)>라는 책에도 이런 연구 결과가 나옵니다. 새로운 것을 계속 시도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의지가 노화를 늦춘다는 게 책의 설명입니다. 게다가 나이를 먹으며 쌓은 지혜와 경험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사례가 이를 증명합니다. 베라 왕은 40세에 웨딩드레스 사업을 시작했고, 레이 크록은 52세에 맥도날드 체인 사업을 일으켰습니다. 맨부커상 수상자인 페넬로페 피츠제럴드는 58세에 첫 작품을 썼고,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68세 이후 자신의 대표작 대부분을 완성했습니다.



뭔가를 배우거나 노력하는 데에 늦은 시기는 없습니다. 기회는 항상 열려 있습니다. 꼭 그림을 그릴 필요도 없습니다. 좋은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새로운 것을 접하고 배워서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아간다면 족합니다. 노력하는 그 과정에서 삶은 더욱 풍요로워지겠지요. 그리고 어쩌면 상상하지 못했던 성취와 기쁨이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오늘 소개한 세 사람의 화가처럼요.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i>**이번 기사는 'Experience: I became a famous artist at the age of 94'(The Guardian), 'Carmen Herrera, Cuban-Born Artist Who Won Fame at 89, Dies at 106'(NYT), 'Impressive Result at Christie’s Sheds Light on the Steady Ascent of 97-Year-Old Painter Lois Dodd'(Artnews), 'Beer with a Painter: Lois Dodd'(Hyperallergic), 'Lois Dodd’s Life in Nature'(Hyperallergic), 'Why Artist Lois Dodd, One of Our Keenest Observers of the Everyday World, Has Been Painting Windows for 50 Years'(Artnet) 등 기사와 함께, 책 'Grandma Moses: My Life's History'(Moses 지음) 등을 참조해 작성했습니다.</i>



독자 여러분의 응원과 격려에 힘입어 '그때 그 사람' 시리즈 후속작 <명화의 발견, 그때 그 사람>이 출간됐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온라인 서점이나 오프라인 주요 대형 서점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클림트와 에곤 실레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들, 고지마 도라지로와 후안 데 파레하 등 책에서 처음 공개되는 화가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경쟁을 다룬 글처럼 여러분께서 특히 사랑해주셨던 글들과 함께 세잔, 고갱 등 연재분의 내용을 대폭 보강한 글들이 여럿 실렸습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새 책과 관련해 북토크도 오는 11일 열립니다. 신청은 기자페이지에 링크된 인스타그램 계정을 참고해 주세요.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때 그 사람들>은 미술과 고고학, 역사 등 과거 사람들이 남긴 흥미로운 것들에 대해 다루는 코너입니다. 토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쉽고 재미있게 쓰겠습니다. 네이버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6만여명 독자가 선택한 연재 기사를 비롯해 재미있는 전시 소식과 미술시장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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