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세제 심사 앞두고…여의도 호텔 ‘예약 전쟁’ [관가 포커스]

입력 2024-10-31 16:12   수정 2024-10-31 16:23

기획재정부 세제실에서 근무하는 A과장은 지난달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에 있는 호텔 방을 서둘러 예약했다. 내달 중순부터 하순까지 2주일 치를 일괄 예약했다. 내달 중순부터 정부의 세법 개정안을 심의하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때만 되면 세제실 간부들은 정부청사가 있는 세종이 아니라 국회가 있는 서울에서 온종일 대기해야 한다. A과장은 “일정이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호텔을 예약하면 방을 구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평소 대비 가격이 두 배가량 치솟는다”며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구입하기 위해 서둘러 예약했다”고 밝혔다.

매년 11월엔 예산과 세제 전쟁이 시작된다. 지난 8월 말 편성한 예산안을 방어하려는 정부와 증액·감액의 칼을 휘두르는 국회의원들의 치열한 공격이 펼쳐진다. 지난 7월 말 내놓은 세법 개정안도 방어하려는 정부·여당과 이를 뜯어고치려는 야당이 첨예하게 맞선다.

우선 기재부 예산실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은 간부들 뿐 아니라 사무관들까지 11월 한 달 동안 여의도에 상주해야 한다. 예산 심의가 한 달 내내 이어지기 때문이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내달 7일과 8일 종합정책질의, 11일부터 14일까지는 부처별 심사를 진행한다. 18일부터 25일까지는 소위에서 예산의 증액·감액을 심사하고, 29일 전체회의에서 예산안을 최종 의결한다.

기재부 세제실은 11월 중순부터 열리는 조세소위를 준비해야 한다. 작년엔 11월 중순부터 하순까지 2주 동안 8차례의 조세소위가 열렸다. 과장급 이상 간부뿐 아니라 사무관들도 모두 대기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통상 예산·세제 심의는 자정이 넘는 늦은 시간까지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서울에 본가나 묵을 수 있는 거처가 있는 공무원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하지만 자택이 세종인 공무원들은 이 시간엔 기차나 버스가 운행하지 않기 때문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야 한다. 통상 국회 인근 여의도에 있는 비즈니스호텔에 묵는다. 자정을 넘어 퇴근할 뿐 아니라 다음날도 아침 일찍 국회로 출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짧은 기간에 수요가 대거 몰리면서 숙박 가격이 두 배 이상으로 치솟는다는 점이다. 기재부 예산·세제실뿐 아니라 다른 부처 및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도 매년 11월만 되면 국회와의 협의를 위해 여의도를 찾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이 자주 찾는 여의도 G호텔이나 K호텔의 경우 1박 숙박료가 이 때가 되면 특급호텔 수준인 20만원 후반까지 치솟기도 한다. 평소 가격의 두 배 수준이다. 공무원에게 지급되는 하루 출장 숙박비 상한액은 서울 10만원, 광역시 8만원이며 그 외 지역은 7만원이다. 이렇다 보니 여의도 비즈니스호텔에 묵으려면 한 달에만 100만원이 넘는 개인 돈을 써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예산실에서 근무하는 한 사무관은 “여의도 호텔뿐 아니라 마포에 있는 비즈니스호텔도 11월만 되면 가격이 크게 오른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11월말 되면 호텔 예약전쟁이 벌어진다는 것이 기재부를 비롯한 각 부처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설명이다.

여의도에 미처 숙소를 구하지 못한 공무원들은 인근 영등포역에 숙소를 얻기도 한다. 특히 젊은 사무관들은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호텔 방을 같이 쓰는 경우도 많다. 방 한 개를 예약한 후 싱글침대에서 각자 잠을 청하는 방식이다.

세제실에서 근무하는 한 사무관은 “국회가 세종으로 이전하면 공무원들의 출장 숙박비를 대폭 절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업무 효율성도 높아질 것”이라며 “서둘러 국회가 세종시로 이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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