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고전 ‘햄릿’은 언제나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400년의 세월을 건너며 던져온 질문, ‘사느냐 죽느냐’는 모든 인류의 심장을 관통하며 살아남았다. 수많은 배우가 햄릿 역할을 해왔지만 지금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열리고 있는 연극 ‘햄릿’은 화제성 측면에서 그 차원이 다르다. 데뷔 24년 만에 첫 연극 무대에 도전하는 스타 배우 조승우가 주인공을 맡았기 때문이다. 햄릿 역에 조승우가 단일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약 한 달 간의 공연기간(10월 18일~11월 17일), 매회 900석에 달하는 티켓이 예매를 시작하자마자 10분 만에 전석, 전회차 매진됐다.
조승우가 맡은 역할은 덴마크 왕자 햄릿. 햄릿의 어머니인 여왕 거트루드는 선왕이 죽자마자 그의 동생 클로디어스와 결혼한다. 이 결혼으로 클로디어스는 햄릿의 삼촌이자 새아버지, 그리고 새로운 왕이 된다. 햄릿이 클로디어스가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아버지를 죽였다고 의심하는 이유다. 꼬일 대로 꼬여버린 가족사에 햄릿은 어머니를 향한 배신감, 그리고 삼촌을 향한 복수심에 휩싸인다.
조승우는 기대를 뛰어넘는 생명력으로 무대를 휘어잡는다. 실성한 미치광이부터 고뇌하는 철학자, 복수심에 불타는 아들까지 폭넓은 캐릭터가 응축된 햄릿이 살아 숨 쉰다. 조용히 속삭이듯 한숨처럼 내뱉는 독백부터 분노에 치밀어 지르는 괴성까지 대사가 넘실넘실 파도치지만 과하지 않은 완급 조절이 돋보인다. 섬세한 감정 연기에도 단어 한마디 한마디가 또렷이 들리는 조승우 특유의 발성과 발음도 빛난다. 조승우의 햄릿을 두고 ‘185분의 연기 차력쇼’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에 비해 주변 인물은 밋밋하다. 죄책감과 사랑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거트루드의 고민이 잘 느껴지지 않고 갑자기 애틋한 어머니의 옷을 입는다. 햄릿의 연인인 오필리아도 햄릿의 광기에 상처받는 모습에 머물러 비극성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햄릿을 향한 증오심에 불타던 레어티즈도 너무 쉽고 다정다감하게 햄릿을 용서한다.
공연은 원작 희곡에 충실하다. 무대는 군더더기가 없고 대사에는 셰익스피어 특유의 운율이 살아 있다. 다만 이 ‘햄릿’만의 매력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평면적인 주변 인물이 이 문제를 더욱 부각한다. 햄릿 혼자 뜨겁고 나머지 인물이 역동성이 없어 햄릿의 이야기를 받쳐주는 역할에 그친다.
주인공이 삶과 죽음, 영혼의 순수함과 도덕성에 이르는 깊은 고민을 쏟아내지만 이에 대응할 캐릭터가 부족해 일방통행으로 흘러간다. 진득하게 가슴 옥죄는 인간적인 고뇌와 딜레마가 깊게 담긴 예술의전당의 ‘햄릿’. 그 자체로도 ‘햄릿’의 힘은 느껴지지만, 이 작품만의 색깔을 찾는 관객에게는 고전을 ‘재연’하는 무대로 느껴질 수 있다.
구교범 기자 gugyobe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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