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형(23)의 라커룸 소동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가 김주형에 대한 상벌위원회를 열기로 결정하면서다. 특히 공동주관사인 DP월드투어와 대회 후원사인 제네시스의 반대에도 상벌위 개최를 결정한 배경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KPGA는 30일 오후 늦게 "지난 27일 제네시스챔피언십 최종라운드 종료 후 KPGA 회원인 김주형의 본인 사용 라커 문 파손과 관련해 경위를 파악한 결과 김주형에게 충분한 소명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상벌위원회를 개최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11월 6일 상벌위원회를 열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선수가 출석이 불가능할 경우 서면으로 소명 내용이 담긴 진술서를 작성해 상벌위원회 개최 전까지 제출해도 되지만 불출석 사유로 인한 충분한 소명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 스스로 본인의 진술권 및 방어권 행사를 포기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주형의 라커룸 소동이 알려진 28일 "상벌위 개최는 현재 계획이 없다"고 밝힌지 이틀만에 완전히 뒤바뀐 입장을 밝힌 것이다.
김주형은 지난 27일 인천 송도 잭니클라우스GC 코리아에서 열린 KPGA투어와 DP월드투어 공동 주관 대회인 제네시스 챔피언십 최종 4라운드에서 연장 끝에 아쉽게 안병훈(33)에게 패배했다. 이후 김주형이 사용했던 라커룸의 문이 훼손된 사실이 알려졌고, 골프 매너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김주형은 SNS에 영어로 된 입장문에서 "실망하신 분들께 사과드린다"고 밝혔고 한 국내 골프전문 방송채널에 출연해 당시 상황을 해명하기도 했다.
KPGA의 상벌위 개최 결정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것이 골프계 안팎의 평가다. 대회 현장에서 일어난 일이 아닌데다, 공동 주관사인 DP월드투어와 대회 후원사인 제네시스의 반대에도 상벌위 결정을 강행했기 때문이다.
KPGA는 김주형의 라커룸 관련 행동이 확인된 이후 진상조사를 벌이며 관계자들에 의견을 물었다. DP월드투어는 "상벌위를 열 계획이 없고, 코스 밖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상벌위 대상도 아니다"라고 답했고, 제네시스 역시 상벌위 개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KPGA가 상벌위 개최로 가닥잡은데 대해 골프계에서는 "협회 지도부의 의지가 그만큼 강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주형의 영문 사과문과 방송 출연에서의 해명이 이어지면서 협회 고위층에서 "직접 소명을 들어봐야한다"는 기류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한 골프계 관계자는 "KPGA와 김주형 측 사이의 감정의 골이 깊어져 불필요한 진실공방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라며 "어느 측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주형은 이번 대회에 DP월드투어의 초청으로 출전했다. 김주형은 PGA, DP월드투어, KPGA, 아시안투어의 회원 자격을 갖고 있다. 아시안투어를 시작으로 프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2020년 코로나19로 국내로 무대를 옮겨 KPGA투어에서 뛰었다. 2022년 하반기부터 PGA투어로 무대를 옮겨 3승을 올리며 한국 남자골프 간판이자 PGA투어에서도 탄탄한 팬층을 확보한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김주형의 이번 행동에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KPGA의 행보에서 후원사인 제네시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네시스는 2016년 한국 남자골프 투어 사상 처음으로 투어 포인트 상금제도인 '제네시스 포인트' 제도를 도입해 올해로 9년째 후원을 이어오고 있다. 또 2017년부터 투어 최고 규모 대회인 제네시스 챔피언십을 열었고, 올해 이 대회는 DP월드투어와 공동주관으로 바뀌면서 글로벌 대회로 승격됐다. 또 제네시스가 유럽에서 개최하는 제네시스 스코티시 오픈 출전권을 한국 선수들에기 제공하면서 해외진출을 직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결정에서 KPGA는 오랜 동반자이자 후원자인 제네시스의 의견과 입장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제네시스는 이번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로 꼽힌다. 대회가 역대급 흥행을 이루며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지만 김주형과 KPGA간 공방이 이어지면서 빛이 바랜 모양새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골프업계 관계자는 "KPGA가 가장 중요한 후원사 중 하나인 제네시스에 대한 존중을 보이지 않는 것은 향후 투어 운영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여자 골프에 비해 압도적으로 낮은 인기로 고전하는 KPGA가 엉뚱한 방법으로 권위를 세우려고 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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