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법률 검토만 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제 기업 인수·합병(M&A) 변호사는 거래 전략 수립부터 이사회 설득, 규제기관 대응까지 종합 컨설턴트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법무법인 광장의 김상곤 대표변호사는 31일 열린 '제10회 광장 M&A 포럼'에서 M&A 변호사의 역할이 크게 확대됐다고 강조했다. 30년 전만 해도 계약서 작성과 법률 검토가 주된 업무였지만, 이제는 거래의 전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특히 복잡해지는 국제 규제환경과 인간적 요소가 개입되는 거래 특성상, 인공지능(AI)이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최근 가장 큰 변화는 이사회 중심의 의사결정 강화다. 사외이사 제도 정착과 배임죄 리스크 등으로 인해 이사회가 M&A 심사를 더욱 꼼꼼히 하고 있다.
김 대표변호사는 "최근에는 이사회에서 실사의 적정성, 계약조건의 합리성 등을 매우 상세하게 검토하면서 2~3시간씩 질의응답이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며 "미국의 '페어니스 오피니언'(fairness opinion) 같은 제도가 없는 한국에서는 변호사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호준 광장 PE팀장은 "계약서 협상도 이제는 단순히 당사자들의 합의사항을 반영하는 수준을 넘어섰다"며 "시장 관행과 업계 트렌드를 고려한 전략적 조언이 필수"라고 설명했다.
특히 상장사 거래의 경우 소액주주, 기관투자자, 임직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 거래소나 금감원과 같은 규제기관의 반응도 예측해야 한다.
한국 로펌들의 해외 업무 역량도 크게 강화됐다. 강기욱 외국변호사는 "20년 전만 해도 크로스보더 M&A에서 한국 로펌은 한국법 자문이나 실사 정도만 담당했다"며 "이제는 여러 해외 로펌들을 코디네이션하고 거래를 주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AI 발전으로 법률 서비스의 지형도 변화가 예상된다. 구대훈 변호사는 "번역이나 계약서 초안 작성 등 정형화된 업무는 AI가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로펌마다 자체 AI 모델을 개발해 활용하는 것이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EDGAR 시스템처럼 공개된 계약서 데이터를 AI가 학습하면서, 계약서 초안 작성 등의 업무는 빠르게 자동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M&A가 점점 복잡해지면서 변호사의 전문성은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강기욱 외국변호사는 "자국 보호주의 강화로 M&A 실행이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며 "미국의 CFIUS(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나 EU의 FSR(외국보조금규제) 등 각국의 규제를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변호사의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M&A는 단순한 법률 거래가 아닙니다. 당사자들의 관계와 성향, 거래의 배경과 목적 등 인간적 요소가 매우 중요합니다."
문호준 변호사는 "계약서 문구는 다 합의했는데 마지막 순간의 작은 요구 하나 때문에 수천억원대 거래가 무산된 경우도 있다"며 "이런 '감성적 측면'은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광장은 1994년 25명이었던 변호사가 현재 700명이 넘는 대형 로펌으로 성장했다. 김 대표는 "고객이 없는 변호사는 물 없는 물고기와 같다"며 "앞으로도 고객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경쟁력 있는 자문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밝혔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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