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들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이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이는 장사가 안돼서 기한 내에 대출금을 갚지 못한 자영업자의 연체액과 연체율에서 잘 드러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자영업자 대출 연체액은 코로나19 이전(2019년 4분기) 대비 3.1배 증가한 16조5000억 원에 달했다. 연체율 또한 2배가 늘어난 1.56%를 기록했다.” 내수경기가 침체하면서 자영업자들의 한숨이 깊어가고 있다. 예문은 네 문장으로 이뤄진 짧은 내용이지만, 기승전결을 갖춰 문장 전개가 논리적으로 잘 연결돼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대부분 이와 다르게 쓴다. “그들 사이의 경쟁이 점입가경으로 치닫자 보는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 문장에 쓰인 점입가경은 본래 의미와 거리가 멀다. 이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하는 짓이나 몰골이 더욱 꼴불견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부정적 의미로 바뀌었다. 요즘은 ‘점입가경’을 이렇게 더 많이 쓴다.
국어사전에도 이런 용법이 반영돼 있다. <연세한국어사전>(1998년)은 기술(記述)적 관점에서 편찬한 사전이다. 규범적 관점에서 사전을 편찬한 <표준국어대사전>(1999년)에 비해 현실 어법을 많이 수용했다. 이 사전에서는 ‘점입가경’을 두 번째 의미, 즉 부정적 의미로만 다루고 있다. 이미 단어 쓰임새가 완전히 바뀌어 첫 번째 의미는 잃은 것으로 봤다는 뜻이다. 하지만 1957년에 완간된 <조선말 큰사전>(한글학회)만 해도 ‘점입가경’은 본래 용법인 긍정 의미로만 쓰였다. 이후에 의미변화가 일어났을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예문에서 ‘점입가경’이 자연스럽지 않은 까닭을 생각해보자. 점입가경의 바뀐 의미 용법의 핵심은 ‘꼴불견’ ‘볼썽사나움’을 비꼬는 데 있다. “민생경제는 어려운데 특별감찰관을 둘러싼 여당의 내홍이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이 점입가경 양상이다.” 이렇게 쓰는 게 제격이다. 예문에서처럼 자영업자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말하면서 꼴불견이라거나 볼썽사납다고 하면 의미 연결이 잘 안 된다. 점입가경이 어색한 까닭은 그래서다. 그보다는 자영업자들의 영업이 갈수록 힘들다는 것을 나타내고자 한 대목이니, “자영업자들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이 갈수록 더해지고 있다” 정도면 무난한 표현이다.
‘점입가경’과 의미 용법이 비슷한 단어가 또 있다. ‘가관’이 그것이다. 이 말은 ‘옳을 가(可), 볼 관(觀)’으로 구성됐다. 경치 따위가 꽤 볼 만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요즈음 내장산의 단풍이 참으로 가관이다”라고 한다. 이게 본래 용법이다. 이 말도 요즘 현실 어법에선 상당히 변형돼 쓰인다. “잘난 체하는 꼴이 정말 가관이다” 식이다. 본래 용법보다 오히려 부정적 의미로 더 많이 쓴다. 이는 꼬락서니가 볼 만하다, 즉 남의 언행이나 상태를 반어적으로 비웃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현실 어법을 많이 수용한 <고려대 한국어대사전>(2009년)에서는 이 두 번째 용법을 이 말의 주된 쓰임새로 다루고 있다.
‘점입가경’과 ‘가관’은 반어적 표현이다. 이런 말을 써먹을 데가 많은 사회는 그만큼 갈등과 다툼이 많다는 뜻이다. 요즘 우리 사회가 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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