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 노조에 두손 두발 들었다…韓 기업들 시달리더니 결국

입력 2024-11-01 18:01   수정 2024-11-01 20:10

노동조합에 가입한 직원이 많을수록 기업이 해외로 떠날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김성현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와 송예나 박사, 한수민 중소벤처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한국경제학회 학술지 ‘한국경제포럼’에 지난달 31일 게재한 ‘노동시장 경직성이 기업의 해외 진출에 미친 영향 분석’ 논문에서 이같이 분석했다. 이번 연구는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구성한 인적자본기업패널 1차(2004~2018년) 자료 중 2007~2017년 데이터와 기업 재무 데이터를 결합해 사용했다.

논문에 따르면 노조 가입자가 증가할 때 국내 제조기업이 한국을 떠나 해외로 나갈 가능성이 커졌다. 노조 가입자 비중이 0~25%인 기업에 비해 비중이 75~100%인 기업의 해외 진출 가능성은 4.3배 높았다. 가입자 비중이 25~50%면 2.1배, 50~75%면 2.6배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 같은 현상은 신제품이나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혁신기업에서 두드러졌다. 노조의 반대로 연구개발 관련 인력 운용에 유연성을 높이기 어려워지면 혁신이 계속될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연구자들은 설명했다.
노조 가입률 75% 넘으면 韓 떠나는 기업 4.3배 ↑
文정부 '소득주도성장' 이후 노동시장 경직성 더 악화돼
노동조합 가입자 증가만큼이나 기업의 해외 이탈에 영향을 준 점은 강성 노조와 노사 간 대립인 것으로 나타났다. 노조 권한이 강한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해외 이탈 가능성이 1.5배, 노사 관계가 대립적인 기업은 1.6배 높아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해외 진출 지역별로 보면 베트남 등 아시아로 나간 기업이 노조 가입자 증가에 따른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아시아 지역의 유연한 노동 환경 등이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미국 등 북미 지역 진출 기업은 노조와 큰 관련이 없었다. 기업 특성별로 보면 노동집약적이거나 수출집약적일수록 노조 가입자 증가에 따라 해외 진출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김성현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선 기업 내 강성 노조의 입김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며 “노사 간 자율적 합의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사실상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노동시장 유연성을 추진하는 방향의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노조 관련 변수 외에도 기업 규모가 크고 1인당 인건비가 많을수록 해외 진출 가능성이 1.5배 높아진 것으로 분석했다. 무형자산 축적도도 해외 진출 가능성을 1.2배 높이는 요인이었다. 송예나 박사는 “국내 제조 기업은 해외 투자를 결정할 때 노조 가입자 수와 인건비 등 기업이 처한 노동 환경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번 연구 대상 기간(2007~2017년) 이후 노동시장 경직성이 더욱 심화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도입, 노조 조직률 제고 등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시간당 최저임금은 6470원에서 9160원으로 41.6% 급증했고, 노조 조직률은 10%대 초반에서 14% 수준까지 높아졌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지난 7월 발표한 ‘국제 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한국의 기업 여건은 67개국 중 47위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추진하는 유턴 기업 우대 등 리쇼어링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연구자들은 지적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9년부터 작년까지 5년간 유턴 기업으로 지정돼 지원받은 곳은 108곳이었다. 그마저도 대기업은 4곳으로 3.7%에 그쳤다. 송 박사는 “한국을 최적의 투자 입지로 구축하려면 기업의 효율적인 생산 활동 증가를 위해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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