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KR 믿고 돈 댔다가 韓금융사들 '악셀 사태'에 부글부글

입력 2024-11-04 16:23   수정 2024-11-04 17:20

이 기사는 11월 04일 16:23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내 금융사들이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의 악셀그룹 인수에 돈을 대줬다가 물려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글로벌 사모펀드(PEF)를 믿고 인수합병(M&A) 대주단으로 합류하자마자, 유럽 최대 자전거 회사인 악셀그룹이 경영난에 빠지졌다. KKR은 부채를 줄이기 위해 대주단에게 고통 분담을 요구했고, 국내 금융사들은 일방적인 요구라며 분노하고 있다. 협상이 파행에 이를 경우 소송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금융사들은 악셀그룹을 인수한 영국 KKR 측이 제시한 협상안에 대한 최종 의견을 이날 발송하기로 했다. KKR은 2년 전 악셀그룹을 15억6000만유로(약 2조3000억원)에 인수했는데 이중 61%인 9억5500만유로(약 1조4000억원)에 대해선 인수금융을 일으켰다.

신한투자증권이 이 가운데 2000억원을 빌려준 뒤 국내 금융사에 셀다운(인수 후 재매각)했다. 대주단은 DB손해보험, 현대해상, 한국투자증권, 수협중앙회, 메리츠화재, KB증권, 신한캐피탈, 신한투자증권, 하나은행, 국민은행 등으로 꾸려졌다. 이들은 당시 대출금 대비 자본 비율이 높다는 점에서 구조가 안정적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자금을 투입한 지 반 년도 지나지 않아 회사가 심각한 경영난에 빠지며 손실 위기에 처했다. 인수 당시만 해도 'ESG 열풍'에 올라타 매출이 급증했지만 작년부터 열풍이 식으며 판매가 부진해졌고 재고도 쌓여갔다. 재고를 처분하기 위해 대폭 할인에 나서며 실적도 타격을 입었다. 작년 매출이 10% 줄었고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90% 급감했다. 부채도 14억유로(약 2조원)까지 늘었다.

S&P도 "시장 상황이 회복되지 않거나 실적이 개선되지 않으면 채무불이행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신용등급을 'B-'에서 'CCC+'로 낮췄다. 엎친 데 덮친 격 지난 7월엔 '품질 스캔들'로 네덜란드 당국이 판매에 제동을 걸면서 대규모 리콜 사태까지 벌어졌다. 올해 실적이 더 고꾸라질 것으로 관측된다.

영국 KKR은 부채를 줄이기 위해 7월부터 본격적으로 대출기관들과 협의에 나섰다. 하지만 대출액 중 75%를 탕감해달라는 조건을 제시해 반발을 샀다. 국내 금융사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무리하게 진행하면 한국에서 투자를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란 내용이 담긴 경고성 서한을 보냈다.

KKR 측은 한발 물러서 75% 대신 40%로 탕감 비율을 낮추고 출자전환도 일부 가능하게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여기에 선순위에 앞서 최선순위 대주단을 새로 꾸려 현금을 수혈하는 '레스큐 파이낸싱'(Rescue financing)안을 추가로 제시했다. 한국에선 거의 쓰이지 않지만 미국에선 '고금리 급전' 개념으로 흔히 쓰이는 방식이다. 해외 대주단은 파산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자금을 추가로 태울 의사가 있는 분위기다. 반면 과거 외환위기 시절 비슷한 방식으로 구제금융에 나섰다가 손실을 본 경험이 있는 국내 금융사들은 거부감이 크다.

출자전환 규모에 대해서도 양측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국내 금융사는 50% 가량의 출자전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는 채권단 주도 하에 경영하겠다는 의미여서 KKR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협상이 결국 파행에 이를 경우 소송전으로도 번질 가능성이 있다. 인수금융을 주선한 신한투자증권 측에서 법적 수단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은 기자 hazz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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