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힐’로 잘 알려진 글로벌 담배 회사 브리티시아메리칸타바코(BAT)가 이달 한국에서 합성 니코틴을 사용하는 액상형 전자 담배를 출시하려던 계획에 제동이 걸렸다. 주요 유통 채널인 편의점 업계와 대형 전자 담배 총판 회사들이 합성 니코틴 담배에 대한 법적 근거 미비 등을 이유로 판매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합성 니코틴이 들어간 전자 담배는 담배로 분류되지 않아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합성 니코틴 전자 담배 출시를 통해 한국에서 미미한 전자 담배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려던 BAT는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BAT가 합성 니코틴 담배를 출시하는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KT&G, 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PMI), JTI 등 다른 대형 담배 제조사들은 한국을 비롯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합성 니코틴 담배 출시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
전자 담배에는 니코틴이 포함된 액상을 가열해 수증기를 들이마시는 액상형과 담뱃잎을 쪄서 수증기를 흡입하는 궐련형이 있다. 담배 업계에서는 국내에 유통되는 액상형 전자 담배의 90%가량이 합성 니코틴 함유 제품인 것으로 추산한다. 대부분 중국산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1~9월 합성 니코틴 수입량은 316t으로, 이미 지난해 전체 수입량(216t)을 훌쩍 넘어섰다.
합성 니코틴은 연초 잎에서 추출한 천연 식물성 니코틴이 아닌 니코틴산 에스테르 같은 화학물질을 섞어 만든 것이다. 담배사업법상 담배는 ‘연초의 잎을 원료로 제조한 것’으로 정의되기 때문에 합성 니코틴 전자 담배는 담배로 분류되지 않고, 담배 관련 규제도 받지 않는다. 담배 소비세 같은 부담금이 부과되지 않고, 광고 금지나 유해 문구 표기 관리 대상도 아니다. 인터넷뿐 아니라 시내 곳곳의 무인 판매점에서도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청소년 흡연 문제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19~2023년 청소년 흡연자 10명 중 3명(32%)은 액상형 전자 담배로 흡연을 시작했다.
현재 국회엔 합성 니코틴 전자 담배의 무분별한 확산을 막기 위해 담배 뿌리나 줄기에서 추출한 니코틴이나 합성 니코틴을 사용했을 때도 담배로 간주하는 내용의 담배사업법 개정안이 제출돼 있다. BAT가 노마드 출시 계획을 발표한 뒤 정치권과 담배 업계에서는 합성 니코틴에 대한 규제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BAT의 전자 담배 시장 점유율 반등도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궐련형 전자 담배 ‘글로’, 액상형 전자 담배 ‘뷰즈고’를 판매하는 BAT는 유독 한국 시장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대형 담배 제조사 중 액상형 전자 담배를 국내에 내놓은 곳도 BAT가 유일하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올해 1~10월 BAT의 편의점을 포함한 소매 시장 점유율은 11.03%로, 작년 한 해 전체 점유율(11.46%)보다 낮아졌다.
업계 일각에서는 BAT가 실제로 합성 니코틴 전자 담배 출시 의지가 있었는지에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한 대형 담배 제조사 관계자는 “합성 니코틴을 규제하면 합성 니코틴 전자 담배에서 BAT의 액상형 전자 담배인 뷰즈고로 갈아타는 소비자가 많아질 것으로 보고, 판매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규제 도입을 앞당기기 위해 노마드 출시 계획을 밝힌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고 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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