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보이스'로 직장 성희롱 신고…음성위조 밝혀낸 지평

입력 2024-11-03 17:57   수정 2024-11-04 07:41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짧은 음성만으로 특정인 목소리를 흉내 내는 ‘딥보이스’ 기술을 직장 내 괴롭힘 증거로 악용한 사례가 처음 적발됐다. 법무법인 지평은 누구나 쉽게 이 음성이 딥보이스 기술로 조작됐다는 사실을 밝혀 해당 사건에 대한 노동청의 직장 내 괴롭힘 불인정 판단을 이끌어냈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최근 파견직 비서 A씨가 담당 임원 B씨를 가해자로 지목해 제기한 직장 내 괴롭힘 및 성희롱 진정 사건에 대해 피해를 불인정하고 사건을 종결했다. A씨는 지난 6월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며 노동청에 진정을 내면서 B씨가 성희롱하는 육성이 담긴 음성 파일과 녹취록 여러 건도 제출했다.

B씨는 조사 과정에서 해당 발언을 한 사실이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했고, 함께 조사받은 임직원도 일관되게 ‘정황상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음성 파일과 속기사가 작성한 녹취록이 증빙자료로 제출됐기 때문에 노동청은 조사 강도를 한층 높였다.

회사 측을 대리한 지평은 음성 파일 자체가 조작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이에 최근 일반인도 저렴한 가격으로 딥보이스 기술을 이용해 위조 음성 파일을 얼마든지 제작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음성 파일의 진위를 살펴달라고 근로감독관을 설득했다. 또 A씨가 음성 파일을 회사에 내지 않고 노동청에만 제출한 점을 지적하며 고의성을 부각했다. 아울러 해당 발언을 했다는 시각에 B씨가 회의하거나 외부 일정을 하고 있었다는 알리바이를 확보했다. 이에 노동청은 음성 파일의 진위를 들여다봤고, 그 결과 조작된 파일로 결론 내렸다.

권영환 지평 노동그룹장(변호사시험 3회)은 “이번 사건은 음성 파일도 증거의 일치성과 연계성을 꼼꼼히 검증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며 “법원에 조작된 음성 파일을 제출하면 공무집행방해죄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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