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화장품 브랜드 탈리다쿰(Talitha Koum)을 창업한 채문선 대표(사진·37)의 어린 시절 얘기다. 채 대표는 애경그룹 3세다. 장영신 애경 회장의 손녀이자 채형석 총괄부회장의 장녀다.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재벌가 첫째 딸의 학창시절은 '피부병과의 전쟁'이었다.
2013년 결혼한 채 대표는 아이 셋을 낳은 다둥이 엄마다. 출산은 직접 화장품을 만들어 쓰는 계기가 됐다. 채 대표는 "아이 셋을 임신하는 동안 약을 못 먹으니, 애써 억눌러왔던 피부 질환이 극도로 심해졌다"며 "이것저것 써보다가 우연히 지인 추천으로 염증성 질환에 좋다는 하얀 민들레에 대해 알게 됐다. 먹고 바르며 효과를 체감하고는 이 재료로 직접 화장품을 만들어 봐야겠다고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흰 민들레를 들고 몇개월을 전국 화장품 연구소를 찾아다녔어요. 많은 연구소에서 퇴짜를 맞고 딱 한곳에서 제안을 수락해 개발에 들어갔는데 화장품이 나오고 특허를 받는 데만 또 2년 가까이 걸리더군요. 몇년을 화장품 제작에 매달렸는데 이렇게 공들여 만들었으니 많은 사람들이 화장품을 쓸 수 있도록 제품화해보는 게 어떠냐고 남편이 권했습니다.”
채 재표는 2019년 탈리다쿰을 창업했다. 남편인 이태성 사장이 2014년 투자 목적으로 세운 개인회사 에이치피피도 출자했다. 히브리어로 ‘소녀여, 일어나라’라는 뜻을 가진 탈리다쿰의 사명은 성경에서 따왔다. 채 대표는 "누군가가 어려운 길에서 힘들어 무너지고 싶을 때 힘을 얻고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주 원료가 된 하얀 민들레는 피부 장벽 강화에 실제 효과가 있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고 밝혔다. 화장품의 주원료는 흰 민들레 부위 중 가장 효능이 집약되어있는 태좌부분에서 세포를 배양해 추출했다. 국내에서 원료를 국내에서 채취, 배양, 추출한 뒤 미국 캘리포니아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한다.
그는 "애경의 시스템상 제품을 빠르게 개발하고 시장에 내놓아야 하는데 내가 원하는 방향과는 차이가 있었다"고 했다. "원하는 품질이 나올 때까지 긴 호흡으로 연구해 완벽한 제품을 내놓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빠르게 성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는데 이는 결국 회사에 부담을 주는 일이 잖아요. 아버지는 늘 '절대 집안의 일원이 회사에 피해를 주면 안 된다'고 강조하셨죠. 차라리 잘하든 못하든 내 돈으로 하자 생각했어요."
든든한 친정은 그의 사업에 별 도움이 안 됐다. "아버지는 '네 일은 네가 알아서'라고 하는 스타일이예요. 자금 압박이 심할 때 '이렇게까지 지원을 안 해주나' 싶을 때도 있었죠.(웃음). 그래도 응원 많이 해주셨어요. 처음엔 '99%의 도전자가 실패하니 너무 기대 말아라'라고 하시더니 브랜드 론칭하고 5년이 지나니 '독특한 면이 있는 아이니 모 아니면 도겠다. 열심히 해봐라'라고 하시더군요."
'뜬금 없는 변신'의 이유가 궁금해 묻자 "비용을 아끼려고 브랜드 음원을 직접 만든 것일 뿐"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유튜브 활동도 전적으로 브랜드 홍보를 위해서예요. 유명한 사람이나 인기 연예인 모델을 쓸 만큼 자금이 넉넉하지 않았어요. 사무실 인테리어도 직원들과 일일이 발품을 팔며 직접 했을 정도로 돈이 부족했습니다."
채 대표는 2년간의 제품 개발을 거쳐 지난해 처음 제품을 출시한 후 올해 상반기 현대백화점과 세포라 등에 제품을 입점시켰다. 올해 신사동 가로수길에 'TK&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면서 외국인 고객들의 반응을 보고 해외 진출의 가능성도 엿봤다. 내년부터는 미국 유럽 일본 등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목표다.
"회사 운영이 어려울 땐 할머니는 어떻게 했었나를 떠올려보곤 해요. 친정에서 지원 받은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큰 회사를 운영한 조부모님과 부모님 아래에서 자란 것만 해도 남들이 얻지 못하는 혜택을 본 것이더군요. 할머니는 여장부셨어요. 그 시절 여성이라는 사회적 핸디캡을 극복하고 늘 도전했죠. 저도 그럴 거예요. 애경과는 또다른 저만의 화장품 회사를 키워볼 생각입니다. "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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