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원짜리 아파트에 보증금 1억원, 월 250만원 조건으로 2년 간 거주한 A씨는 이사를 갈 때 집주인에게 2년 전 냈던 1억원을 돌려받았다. 아파트 가격이 2년 간 20% 올라 12억원이 됐더라도 A씨의 보증금과는 관련 없는 얘기다.
하지만 한국은행과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제안한 '한국형 리츠' 형태로 거주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1억원의 성격이 '보증금'에서 10억원 아파트의 지분 10%로 바뀌기 때문이다. 월 250만원씩 임대료를 내는 것은 같지만 2년 후 보증금은 12억원의 10%인 1억2000만원이 된다. 집 전체를 소유하지는 않았지만 지분을 가졌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투자이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리츠 회사가 지분 공모 방식으로 아파트 등 주거용 부동산을 공급하되 임차인이 지분투자자 형태로 입주하는 방식이다. 후보지 개발은 공공택지 중 수요를 고려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이 담당하고, 리츠사는 공공 및 민간자금을 통해 재원을 조달한다. 주택 건설 후 지분을 공모해 일정 지분 이상을 취득한 투자자가 해당 주택에 거주하는 임차인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구조다.
기존 뉴스테이 등을 통해 리츠 회사가 주거용 부동산을 공급한 사례는 있지만 임차인이 보증금으로 지분투자를 하는 방식이 제안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진은 10억원 주택의 경우 지분 투자금 1억원에 월 임대료 250만원 정도가 적당하다고 보고 있다. 서민이나 중산층의 경우 바우처 지급 등을 통해 주변 시세보다는 약간 낮은 수준의 임대료를 낼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제안됐다.
리츠 투자자는 배당수익과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지분가치 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 우선 거주하는 임차인이 내는 월세 등이 지분에 따라 배당된다. 지분가치 차익은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것이다. 임차인도 투자자이기 때문에 배당과 지분가치 차익을 모두 받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10억원 아파트가 12억원이 됐을 때 10% 지분 1억원이 1억2000만원으로 커지는 것이다.
김 교수는 "자산가치 상승이 축적된다는 측면에선 전세와 매매의 중간 형태, 실제 거주 방식은 반전세에 가깝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이 경우 가계와 주택담보대출 취급 금융기관에 집중되었던 주택가격 변동 리스크를 다수의 민간투자자에게 분산함으로써 거시건전성 관리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리츠가 확산할 경우 부동산 가격도 다소 안정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세보다 저렴한 초기 임대료, 상승률 제한 등을 할 경우 시세가 전체적으로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들은 한국형 리츠 제도화를 위해선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와 부지를 제공할 지자체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김 교수는 "좋은 부지를 확보하는 것이 이 정책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며 "그린벨트 해제 지역 등을 한국형 리츠로 개발하는 방안을 서울시와 국토부가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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