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보상사업을 빙자해 투자자를 끌어모은 뒤 5000억원가량을 돌려주지 않고 잠적한 일당이 검찰에 넘겨졌다. 주범은 과거 ‘기획부동산’의 대부로 불렸던 인물로 20년 전 똑같은 수법으로 범죄를 저질렀다. 그는 전과만 39건으로 이 중 동종 사기 전과만 22건에 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금융 범죄수사대는 5일 열린 브리핑에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상 사기,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으로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 등 임원 3명을 구속하고 지사장·상무·이사 등 주요 영업책 19명을 불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임정완 금수대 2계장은 “범죄 연루가 됐을 가능성이 높은 나머지 14명에 대해서도 추가 조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 회장 등 일당은 부동산 투자를 명목으로 피해자 2209명으로부터 5281억원가량을 끌어모은 뒤 원금과 수익금을 돌려주지 않고 잠적한 혐의를 받는다. 파악된 피해자 중 50억원 이상의 고액 투자자는 총 8명으로, 이 중엔 83억원을 투자했다가 돌려받지 못한 60대 여성도 포함됐다.
이들은 2021년 9월부터 올해 4월까지 이런 토지보상 투자사기를 벌였다. 정부가 개발할 토지를 미리 매입한 뒤 개발이 확정되면 받을수 있는 보상금을 노린 것이다. 부동산 부흥기에 맞물려 토지를 매입하면 수익을 내준다는 식으로 투자자들을 끌어모았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이들은 투자자들에게 “토지 보상사업을 통해 연 80~250% 수익을 내고 있다”며 설득했다. 이 과정에서 원금 보장을 앞세우기도 했다. 주 피해자 연령대는 50대 이상 중장년층으로 70% 이상이 여성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신규 투자자의 금액으로 기존 투자자의 원금을 돌려막는 전형적인 ‘폰지사기’(다단계 금융사기)로 보고 있다. 케이삼흥은 각 지사와 직급을 두고 투자금을 모집했는데, 직급별로 0.5~3%의 인센티브를 차등 지급하는 전형적인 다단계 구조였다.
이들이 투자를 권한 토지도 대부분 허위매물이었다. 실제 피의자들은 개발 사업 구역 내 일부 토지를 매입한 것으로 확인되나, 보상일이나 보상금액을 알 수 없는 토지가 많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 회장은 투자자들에게 “본인 재산 1500억원을 회사에 언제든 입금할 수 있다”고 과시하거나,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토지를 매입한다”는 식으로 피해자들을 현혹했다. 그는 고향인 전남 영암에 기부금이나 장학금을 지원하는 등 케이삼흥의 재산이 막대한 것처럼 홍보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의 계좌 분석 결과 피의자들은 투자금 대부분을 토지 매입에 사용하지 않고 투자자들에게 원금과 수익금 명목으로 지급하는데 사용했다. 투자금으로 법인 차량을 구매하거나 피의자들의 인센티브 지급에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18년 전 김 회장이 ‘기획부동산’을 앞세워 저질렀던 범죄 수법을 반복했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김 회장은 2007년 개발이 어렵거나 경제적 가치가 없는 토지를 개발할 수 있는 토지로 속여 토지 매매대금을 편취하는 일명 ’기획부동산‘ 사기 수법을 국내에 처음 벌인 인물이다. 김 회장은 당시 실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흐른 가운데 김 회장은 과거 범행 당시 사용했던 법인명을 사용해 2021년 케이삼흥을 설립했다. 김 회장은 다단계 방식으로 투자자 모집한 뒤 금액을 편취하는 과거 수법 그대로 답습해 범행을 저질렀다.
경찰은 지난 3월 ‘특별한 수익이 없음에도 투자자들에게 원금 보장 및 수익금 지금을 홍보해 투자자들을 모으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전국 경찰관서의 사건 병합해 수사에 착수했다. 이후 김 회장 자택을 포함한 전국 지사 6곳 등 총 10개소 압수수색 했다.
경찰은 범죄 수익금 중 142억원 상당의 범죄 수익을 기소 전 몰수 보전 조치했다. 임 계장은 “파악된 범죄 금액 5000억원 중 80%가량은 기존 투자자들의 원금과 수익금으로 지급됐다”면서 “나머지 금액 중 파악된 토지 21필지와 김 회장 소유의 건물 1채를 포함해 범죄 수익금을 몰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 계장은 "앞으로도 서민들의 재산을 노리는 유사 수신·불법다단계 등 민생 침해 금융 범죄에 엄정하게 대응하겠다"며 "원금을 보장하고 고수익을 지급한다며 투자자를 모집할 경우 사기일 가능성이 높기에 각별한 주의를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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