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주류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팬데믹 때 홈술 문화와 함께 미국인의 주류 소비가 늘며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이후 기업들이 가격을 지속적으로 인상하면서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기 시작해서다.
4일(현지시간) 미국 CNN에 따르면 프랑스 명품 주류업체 레미 쿠앵트로, 앱솔루트 보드카 제조업체 페르노리카, 데킬라 호세 쿠엘보 제조업체 프록시모 스피리츠, 대형 맥주업체 안호이저 부쉬 등 세계 최대 주류기업들이 수차례 가격을 인상했다가 역풍을 맞으면서 최근 판매량과 매출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주류 통계 기관 IWSR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전체 주류 판매량은 3% 줄었으며 이는 예상을 웃도는 수치다. 데킬라, 아메리칸 위스키, 맥주, 와인 등 거의 모든 주종이 타격을 받았다. 다만 유일하게 캔 칵테일 부문은 2% 소폭 성장했다.
특히 주류 기업들은 미국에서 넘쳐나는 재고를 처리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 들어 주가가 반토막 난 레미 쿠앵트로는 연간 가이던스(실적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으며 올해 두자릿수 매출 감소를 예상하고 있다. 루카 마로타 레미 쿠앵트로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최근 실적 발표에서 “미국 내 주류 수요가 줄면서 미국 매출이 22.8% 급감했고 코냑 브랜드는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고 말했다.
제임슨과 깔루아를 제조하는 페르노리카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헬렌 드 티소 CFO는 어닝 콜에서 “재고를 줄이기 위한 프로모션 확대로 최근 분기 미국 매출이 10% 감소했다"고 말했다.
리사 호킨스 미국증류주협회 커뮤니케이션 책임자는 “팬데믹 기간 이례적인 판매 호조 이후 주류 산업이 계속해서 재조정받고 있는 가운데, 인플레이션과 높은 금리가 성장을 둔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IWSR은 주류 매출 감소세를 업계 내 정상화 과정으로 주류 판매량이 코로나 이전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인플레이션 장기화에 따라 고객들이 재량 지출을 줄인 것도 주류업계 수익성 악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소비자 수요가 위스키 같은 고급 주류 대신 비교적 저렴한 맥주와 캔 칵테일 등으로 옮겨갔다.
한편 고물가에 지친 소비자들은 저렴한 자체브랜드(PB) 상품에도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최근 매출이 급증한 PB 중 한 곳이 알디다. 미국 2000여개 매장에서 증류주 기반 칵테일, 즉석 음료, 와인, 시즌 맥주 등을 판매하고 있다. 알디의 성인용 음료 매출은 두자릿수 성장세를 기록하며 업계와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알디는 소비자가 가격에 민감해진 시기에 맞춰 파격가를 선보였다. 가령 대형 체인 식료품점에서 수제맥주 가격이 12달러 이상인데, 알디에서는 6개짜리 팩이 8~9달러 수준이다. 이에 알디 맥주 매출은 100% 증가했고, 미국 가구 4분의1 이상이 할인 체인에서 쇼핑하고 있으며 이는 6년 전에 비해 두 배나 늘었다.
조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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