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전자사전 사주신 분 계신가요? 아이가 매번 네이버 영어사전 애플리케이션(앱)을 쓰는데요. 휴대폰 사용 시간을 관리하려다 보니…"
지난달 13일 한 온라인 교육정보 커뮤니티에 이러한 내용의 질문이 게재됐다. 댓글을 단 학부모들은 "(자녀에게) 전자사전을 사줬다. 스마트폰을 옆에 두면 공부에 방해되더라"라며 전자사전 구매를 추천했다. "지금은 종이사전을 사용하게끔 지도하고 있는데, 전자사전을 구매해야 할지 고민된다"는 글도 있었다.
2010년께 스마트폰이 대중화하면서 사양길을 걸은 전자사전이 뜻밖의 수요로 명맥을 잇고 있다. 교육열이 높은 학군지에 학부모들이 자녀의 학습 목적으로 구매하거나,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지 않은 만학도들이 종종 찾는다는 설명이다. 대부분의 전자사전 브랜드가 사업을 철수한 가운데 국내서 전자사전을 계속 유통하고 있는 한 업체는 스마트폰 사용이 금지된 기숙학교 학생들이나 어학연수자가 구매한다고 밝혔다. 방학 시즌 등 성수기에는 월 1000개까지도 팔렸다는 설명이다. 수요가 한 제품으로 몰린 탓이다.
전자사전이란 사전의 기능을 수행하는 소형 전자기기다. 마치 노트북을 축소해둔 것처럼 생겼다. 두꺼운 종이사전 수십권이 한 손에 쥘 수 있는 수첩 모양의 기기에 내장돼있어, 2000년대 후반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스마트폰이 출시되기 전까지 중·고등학교 교실에서 전자사전 없는 학생이 없을 정도였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아이리버의 경우 연간 20만대가량의 전자사전 판매고를 올렸다.
5일 점심께 서울 용산구 용산전자상가 일대. 평일이라 대부분 한산한 모습이었으나 아직 몇몇 매대에선 전자사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부분 중고품이었다. 매입도 가능했으며 구매 가격은 8만~20만원대로 다양했다. 앞서 국내 브랜드인 아이리버는 2015년 전자사전 사업을 철수했고, 카시오나 샤프 등 일본 브랜드 수입도 2012년께 모두 중단됐다.
전자상가 1층서 소형 가전을 판매하는 50대 박모 씨는 "전자사전 단종된 지가 10년은 됐다"며 "이 자리에서 30년째 영업을 잇고 있는데, 연간 수십만대씩 팔리던 전자사전이 스마트폰이 등장 이후 아예 맥을 못 췄다"고 말했다. 다만 "간혹 판매 문의가 있긴 하다. 전자사전을 판매하는 날이 한 달에 1~2번꼴이다. 나도 신기해서 구매 이유를 물어보면 스마트폰을 반납해야 하는 생활 환경인 기숙학교 학생들, 어학연수 예정자, 폴더폰을 사용하는 만학도 어르신 등이 대부분"이라며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용산전자상가 소형 가전 매장 20여곳을 돌아보니 중고품을 포함해 전자사전을 판매하는 곳은 5곳 남짓이었다. 새제품으로 판매되는 전자사전은 대만 브랜드 '베스타'의 전자사전이었는데, 상인들은 "국내에서 지금까지 유통되는 유일한 전자사전 브랜드"라고 설명했다. 해당 브랜드 제품은 신제품으로 중고품보다 비싼 20~30만원대에 거래되고 있었다. 내장된 사전 수에 따라 가격이 상이했다.
인근 매장을 운영하는 40대 A씨는 "용산까지 와서 전자사전을 구매하는 수요는 잘 없고, 온라인 스마트스토어 등 쇼핑몰에서 꽤 팔린다"면서 "학부모 손님은 주로 중고품보다 새제품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국내서 베스타 전자사전을 유통하는 수입업체 삼신이앤비의 관계자는 "스마트폰 출시 이후 전자사전 시장이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다"면서도 "다만 국내서 정식으로 전자사전을 유통하는 업체가 우리 기업뿐이라 어학연수나 방학 시즌에는 최근까지도 월 1000대씩 팔린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런데도 기업의 주력 판매 제품은 아니다"라며 "월별 판매량 편차가 큰 편"이라고 덧붙였다.
2025년에 중학생이 되는 자녀를 위해 최근 온라인 쇼핑몰에서 전자사전을 구매했다는 40대 대치동 학부모 김모 씨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에 비교하면 사용법이 아주 불편하다"면서도 "그런데 그게 장점이다. 자녀가 학습 시간 동안 온전히 공부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변 학부모들도 전자사전 구매에 관심이 많으며, 학원 설명회에 가면 영어 강사들이 전자사전 구매를 학습법으로 권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자녀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인터넷 강의 수강을 위해 태블릿PC를 필수적으로 마련해야 해 인터넷 통제가 어렵다는 설명도 있었다. 대치동에서 고등학교 1학년 자녀를 키우는 이모 씨는 "학원에서 휴대폰은 걷어도 아이패드는 못 걷는다"며 "놀까 봐 걱정은 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대치동에서 교육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박은주 씨는 "인근 중·고등학생 위주로 아직 전자사전을 사용하는 학생들이 많다"며 "스마트폰으로 사전 앱을 사용할 경우 학습 외에 다른 목적으로 스마트폰을 쓸 우려가 크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이어 "최근 디지털 교과서를 포함해 학교서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인터넷 활용을 허용하는 분위기에 대해서 학부모들 사이에서 불만이 많다"며 "가정에서라도 공부할 때 휴대폰을 방에 놓지 않도록 규칙을 정해 공부시키는 학부모들이 많다"고 전했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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