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사비 인상 등으로 재건축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이 확대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시공사 선정 때 ‘책임준공 확약’ 조항을 넣는 문제를 놓고 조합 내부 갈등으로 번지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책임준공은 건설사 등이 정해진 기간 내 공사를 마친다는 의무를 명시한 약속이다. 천재지변, 내란, 전쟁 등의 상황이 아닌 이상 준공 기한을 지키지 못하면 공사비 추가 증액분과 금융비용 등을 시공사가 책임져야 한다. 신탁 방식 재건축·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은 시공사 대신 신탁사가 준공 의무를 대신 수행하거나 필요한 자금을 조달해 대출금을 상환하는 책임을 진다.
조합 내 의견이 갈리며 다시 대의원회에서 긴급 이사회가 통과시킨 시공사 선정 계획안이 부결됐고, 시공사 선정도 미뤄졌다. 방배15구역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책임준공 확약 안건을 다시 상정하기 전에 시공사 선정 방식을 바꾼 이사들에 대한 해임안을 조합장 직권으로 총회에 올리기로 했다”며 “시공사 선정은 이르면 연내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우성1·2·3차아파트 재건축 조합도 시공사 선정 방식을 두고 조합원 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조합은 9월 시공사 입찰공고를 냈지만 지난달 17일까지 입찰 참여 확약서를 제출한 곳은 GS건설 한 곳에 그쳤다. 입찰에 응하지 않은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은 책임준공 확약 조항이 수정될 경우 참여할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조합 관계자는 “내부에서 계약 장벽을 낮춰 경쟁 입찰을 유도하자는 의견과 책임준공 확약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고 전했다.
책임준공 문제를 둘러싸고 대주단과 신탁사 간 법적 분쟁도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신한자산신탁은 올해 책임준공 의무 위반을 이유로 네 차례나 소송을 당했다. 세종시 일대 호텔 개발사업에 투자한 교보증권 등 대주단은 9월 서울중앙지법에 신한자산신탁을 상대로 658억원 규모 약정금을 달라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다. 2020년 말 착공 이후 준공 시점이 계속 미뤄지면서 책임준공 기한을 넘긴 상태다.
대주단은 신한자산신탁에 대출 원리금과 전환사채 원리금, 지연 손해금 등을 요구하고 있다. 비슷한 이유로 인천 서구 원창동 물류센터(575억원), 안성·평택 물류센터(860억원), 창원 멀티플렉스(524억원) 등의 사업장에서도 소송이 진행 중이다. KB부동산신탁 역시 평택 물류센터 관련 104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당했다.
정부는 책임준공 확약 제도가 시공·신탁사 등에 과도한 부담을 지운다는 판단에 면책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체 보상금’ 수준으로 면책 범위를 넓히면 행정명령, 파업, 전염병, 문화재 출토 등의 문제로 공사 기한을 지키지 못한 경우 책임준공 미준수로 인한 채무 부담을 떠안지 않아도 되는 길이 열릴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면책 범위 확대 등 책임준공 제도 개선안을 마련해 연내 관련 대책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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