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한 달간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등 주요 아시아 국가 가운데 한국에서만 글로벌 펀드의 투자 자금이 유출됐다. 최근 국내 증시가 얼마나 글로벌 투자자 사이에서 외면받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5일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 증시에선 34억달러의 글로벌 펀드 자금이 빠져나갔다. 이 기간 이 자금을 가장 많이 흡수한 나라는 대규모 경기 부양책 발표로 주목받은 중국(963억달러)이었다. 일본에는 166억달러, 대만에는 11억달러의 자금이 흘러 들어갔다. 10월 한 달간 코스피지수는 1.43% 하락했지만 같은 기간 일본 닛케이225지수와 대만 자취안지수는 각각 3.06%, 2.68% 상승했다. 아시아 외에 미국에도 647억달러의 자금이 들어오는 등 주요국에 글로벌 펀드 자금이 몰렸다.
한국이 글로벌 투자 시장에서 사실상 ‘왕따’가 된 셈이다. 현재 코스피지수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약 0.9배다. 순자산가치를 밑돌 정도로 싼 가격이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싸다’는 것도 주식시장에선 큰 장점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증시는 글로벌 시장에서 외면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둔화한 상장 기업의 경쟁력, 유상증자·중복 상장 등으로 인해 지나치게 늘어난 상장 주식 수, 바닥을 친 시장에 대한 신뢰 등이 국내 증시를 짓누르는 고질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①경쟁력 실종된 상장 기업
전문가들은 “증시 경쟁력은 곧 상장 기업의 경쟁력”이라며 최근 증시 급락의 본질적인 원인은 기업 경쟁력 둔화에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동안 한국 증시가 기대온 삼성전자(시가총액 비중 17%)가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도태하면서 시장 전체의 경쟁력이 크게 하락했다는 것이다. 시총 5위인 현대자동차 주가가 지지부진한 것도 결국 자동차산업의 미래인 자율주행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한 증권사 대표는 “2차전지와 D램 반도체, 조선 등 한때 한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빛났던 기업들이 모두 중국에 쫓기는 처지가 됐다”고 지적했다. 바이오와 방산이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증시 전체를 끌어올리기엔 아직 시총이 적다는 문제가 있다.
②덩치만 커졌다
급증한 상장 주식 수도 증시를 짓누르고 있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0.47% 하락한 2576.88에 마감했다. 2018년 초와 비슷한 수준이다. 반면 2023년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순이익은 약 81조원으로 2018년(약 36조원) 대비 2.2배 증가했다. 상장사가 벌어들인 돈이 두 배 넘게 늘어난 사이 지수는 제자리걸음하는 건 상장 주식 수가 너무 많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빈번한 유상증자와 주식연계채권 발행, 신규 상장이 원인으로 꼽힌다.
③신뢰가 없다
‘국장에 투자하면 뒤통수 맞는다’는 부정적 인식이 팽배해진 것도 악재로 자리 잡았다. 2021~2022년 카카오페이·뱅크와 LG에너지솔루션의 ‘쪼개기 상장’은 자본시장이 소액주주를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부실 공시도 증시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켰다. 올해(1월~11월 5일)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건수는 136건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102건) 대비 33% 급증했다. 금양이 대표적 사례다. 지난 9월 ‘몽골 광산 개발 사업에 대한 판단 오류’였다며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를 1610억원에서 13억원으로 대폭 축소했다. 주가는 고점 대비 3분의 1토막이 났다.
④사라진 기관투자가
국민연금을 제외한 기관투자가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기관투자가는 5년 연속으로 국내 증시에서 순매도 기조를 지속했다. 이 기간 약 106조원어치를 팔아치웠다. 펀드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환매하는 투자자가 늘어났다. 8월 이후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15조원어치를 순매도했다.
개인이 삼성전자를 ‘올인’하는 수준으로 사들였음에도 매도 물량을 받아내지 못하면서 증시 수급이 비어버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성미/류은혁/이시은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