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감에게 대접한 병영불고기 먹으러, 강진이다

입력 2024-11-07 07:40   수정 2024-11-07 16:40

강진하면 먹물 같은 묵직한 농도와 무게감이 느껴진다. 대숲과 갈대숲을 스치는 바람결에 선비의 한과 집념이 전해져서일까.



선비의 유배지, 강진을 만나다

강진은 다산 정약용이 오랜 세월 유배한 곳인만큼 관련한 명소가 여럿 있다. 첫 번째로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이다. 다산 정약용은 강진에서 18년을 유배했는데 그중 11년을 다산초당에 머물면서 목민심서, 경세유포, 흠흠신서 등 600여 권에 달하는 조선조 후기 실학을 집대성했다. 화내면 지는 것, 울면 지는 것이라는 말도 있는데 선비의 발자취는 흉내도 못내겠다.



두 번째는 백운동원림이다. 다산은 1812년 초의선사, 제자들과 함께 월출산을 등반하고 백운동원림에 들렀다. 조선 중기 처사 이담로가 조영해 은거했던 별서 정원으로 다산은 이곳에서 단 하룻밤을 유숙하고 <백운첩>을 남겼다. 하룻밤이 잊고 싶지 않은 꿈처럼 진했으리.



다산은 초의선사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하고 서시와 발문, 백운동 12경 등을 시와 그림으로 담았다. 애틋한 마음이 만든 시첩 덕분에 백운동원림은 그때 그 모습으로 복원되어 오늘날까지 경승지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백운동원림의 대숲을 따라 나서면 월출산을 병풍처럼 두른 강진다원이다. <구운몽>의 팔선녀가 머물다 갔을 법한 월출산 봉우리가 기이하고 신비롭다.



한편, 다산초당에서 초의선사가 머문 백련사는 걸어서 갈 수 있을 만큼 가깝다. 초의는 다산보다 24살이 어렸지만 두 사람은 학식을 나누고 우정을 쌓다. 초의는 다도의 달인으로 정평이 난 인물로, 다산이 호에 차 다(茶)를 쓸 만큼 사랑한 데에 초의의 영향이 컸다고 알려져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짱뚱어를 보다

강진에 가서 강진만생태공원을 보고 오지 않는 것은 양복을 잘 차려입고 넥타이를 매지 않은 것과 같다. 강진만생태공원은 1131종의 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이자, 축구장 면적의 90배가 넘는 갈대군락지가 형성되어 어느 계절 방문해도 자연의 멋이 넘실댄다.



갈대 사이의 생태탐방로를 지나면, ‘날 허투루 보지 말라고’ 작지만 단단한 몸매의 짱뚱어가 시선을 끈다. 갯벌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는 짱뚱어, 큰 녀석은 어른 손바닥만 하다. 미남미녀에 속하는 외모는 아니다. 두 눈은 튀어나올 듯 부리부리하고, 머리부터 몸통까지는 둥글고 투실투실, 꼬리 부분에서 급격히 가늘어져서 올챙이 같다. 성질은 세상에 불만 많은 청소년 같다. 참지 않는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눈이 튀어나온 모양을 두고 철목어(凸目魚), 서유구는 <전어지>에 탄도어(彈塗魚)라고 짱뚱어를 기록했다. 갯벌 위에서 상대를 향해 빠르게 튀어나가거나, 높이뛰기(점프)를 하는 모양을 빗댄 것으로 추측된다.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이 나타나면 등지느러미를 위로 바짝 치켜 몸을 키우고, 좌우로 난 지느러미를 지지대 삼아서 갯벌 위를 미끄러지듯 활보한다.



그중 짱뚱어는 무더위와 추위에 약하고 겨울에는 동면을 한다. 더 추워지면 갯벌에 몸을 숨겨 귀여운 모습을 볼 수 없다. 대신 시베리아에서 큰고니 2000여 마리가 날아온다. 11월에서 2월이면 날갯죽지에 고개를 파묻고 쉬는 큰고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병마절도사가 현감에게 대접한 돼지불고기

강진하면 한정식으로도 유명한데, 부담없는 가격의 병영불고기도 인기다. 강진 10미에 속하는 돼지불고기구이로 병영불고기, 병영돼지불고기 등으로 불린다. 이 병영불고기가 만들어진 곳이 병영면에 소재하는 전라병영성이다. 조선 1417년인 태종 17년에 축조해 1895년 갑오경장까지 전라도와 제주도를 포함한 53주 6진을 총괄한 육군의 총지휘부였다.



어마어마한 역사의 전라병영성은 지난 1997년 사적으로 지정되면서 소실된 건물과 유적의 복원 장비 작업이 시작됐다.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성문과 성벽 일부가 복원되어서 웅장한 멋을 느낄 수 있다. 전라병영성에서 병영돼지불고기가 탄생한 데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진다. 항렬과 직책이 반복해 등장하니 잘 읽어보자.



‘강진 현감의 친조카가 전라병영성 최고 책임자인 병마절도사로 부임해서 현감이 축하 인사를 하러 갔다. 병마절도사의 지위가 높지만, 현감을 웃어른으로 대접해 양념이 잘 된 돼지고기를 내놓은 것이 병영불고기의 시초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병영면에는 ‘병영 돼지불고기’를 맛볼 수 있는 식당이 두루 자리한다.

(사진=이효태 포토그래퍼)
정상미 기자 vivi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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