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 왕(37)과 비킹구르 올라프손(40)은 ‘클래식은 올드하다’는 인식을 가볍게 넘어서는 아티스트다. 방식은 사뭇 다르다. 중국 베이징 출신인 유자 왕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교로 20대에 빠르게 슈퍼스타가 됐다. 프로코피예프와 쇼스타코비치 협주곡 등 화려하고 에너지 넘치는 곡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쇼트커트 헤어, 몸에 딱 붙는 초미니 드레스, 높은 힐로 완성되는 파격적 스타일의 클래식 연주자로도 유명하다.
반면 아이슬란드 출신인 올라프손은 반짝이는 기획과 바흐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으로 클래식계를 장악했다. 기교나 속주보다 그만의 감성과 독특한 해석에 방점을 찍는다. 180㎝를 넘는 키와 호리호리한 몸매, 웜톤의 댄디한 슈트를 즐겨 입고, 뿔테 안경을 쓴 그는 겉모습마저 대척점에 있다.
결이 다른 두 피아니스트가 만나 협주를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난달과 이달 초까지 유럽 전역을 강타한 둘의 ‘투 피아노스(Two Pianos)’ 투어는 그런 상상을 놀라운 현실로 만들었다. 지난달 20일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를 시작으로 빈, 룩셈부르크, 뮌헨, 베를린을 거쳐 파리까지 10개 지역 11회의 공연은 전석 매진 기록을 세웠다.
지난 1일 런던 사우스뱅크센터 로열페스티벌홀에서 열린 공연을 찾았다. 두 슈퍼스타의 등장에 티켓 가격이 평소보다 2~3배 비싸게 책정됐는데도 200만원이 넘는 VIP석까지 모두 매진됐다. 결국 무대 위에서 볼 수 있는 객석이 추가됐고, 2700석 넘는 객석은 이날 온전히 만석이었다. 87세의 영국 ‘국민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는 물론 런던의 유명 인사들이 몰려들었다.
첫 곡은 루치아노 베리오의 ‘물의 피아노(Wasserklavier)’. 차분하고 로맨틱한 분위기로 시작했다. 곧바로 두 번째 곡인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환상곡’으로 넘어가 두 사람은 절묘한 합을 보여줬다. 유자 왕이 올라프손의 드라마틱하고 섬세한 연주 스타일에 맞추는 듯하다가, 올라프손이 유자 왕의 파워풀한 타건에 맞춰 속도와 볼륨을 끌어올리며 호흡을 맞췄다. 두 피아니스트는 거의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서도 서로 소리를 듣고, 느끼고, 합쳐가며 18분간 로맨틱한 연주를 들려줬다.
슈베르트 이후 존 케이지의 ‘Experiences No.1’에서는 조용하고 사색적인 연주를 들려줬다. 두 사람의 에너지가 최대치로 폭발한 곡은 콘론 냉커로우의 ‘Player Piano Study No. 6’. 1부 마지막 곡인 존 애덤스의 ‘할렐루야 정션(Hallelujah Junction)’은 숨 쉴 틈 없는 빠른 전개에 밝고 경쾌한 분위기가 압도적인 곡으로 현대 음악에 재즈풍이 묻어나는 연주였다. 유자 왕의 손가락은 믿을 수 없는 스피드로 몰아쳤고 올라프손의 저음은 묵직하고 강렬하게 내리쳤다. 두 사람은 스릴 넘치게 속도와 강약, 박자를 가지고 놀다가 격렬한 피날레를 선보였다.
2부의 마지막 곡은 라흐마니노프의 ‘교향적 무곡(Symphonic Dances)’으로 두 사람은 리듬을 갖고 노는 듯한 호흡으로 객석을 사로잡았다.
이후 무려 6곡의 앙코르가 이어졌다. 앙코르 무대에선 두 사람이 나란히 한 피아노에 앉아 연주를 함께했다. 둘의 뒷모습은 마치 사이좋은 친구처럼 다정해 보였고 객석엔 웃음이 번졌다. 커튼콜 후 올라프손과 유자왕은 서로에게 아티스트로서 깊은 경의를 표했다. 이 공연은 내년 2월 캐나다 토론토 왕립음악원과 뉴욕 카네기홀 등 북미 투어로 이어진다.
런던=조민선 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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