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차기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면서 한국을 둘러싼 외교·안보 지형도 급변할 전망이다. 동맹의 가치보다 거래를 중시하는 트럼프 특성상 미국 외교 전략의 틀이 크게 바뀔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당장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들에 더 많은 방위비 분담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일이 북핵 위협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확장 억제 정책도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가 공언해온 대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조기 종식될 경우 동북아시아 안보 지형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재집권 이후에도 한·미동맹의 본질적 성격이 흔들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을 견제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미 간 안보·경제·기술 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트럼프도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6일 기자들과 만나 “그동안 어떤 후보의 조언자가 방한하든 대통령과 외교안보라인에 한·미동맹을 계속 존중하면서 글로벌 차원에서 발전시켜나가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안보가 한 치의 흔들림도 없도록 워싱턴 신행정부와 완벽한 한·미 안보 태세를 구축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각론은 다른 얘기다. 특히 북핵과 관련한 정책이 바뀔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트럼프가 비핵화가 아니라 핵 군축 협상을 시도한다면 한국에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 미국 본토에 대한 핵 위협만 통제하고 대북제제를 완화하는 ‘스몰딜’을 타협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현욱 세종연구소장은 “미·북 정상이 만나더라도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방식) 같은 조건을 요구하면 북한이 거부할 것을 미국도 안다”며 “결국 느슨한 북핵 검증이 될 수밖에 없고 한국의 큰 위험요소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양 위원은 “미·북 정상회담이 추진되더라도 한국이 배제되지 않고 북한 비핵화를 목표로 진행될 수 있도록 미국과 긴밀한 협의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약 우크라이나전이 조기 종결되면 한국이 전쟁에 연루될 가능성이 낮아져 일부 긍정적인 효과도 기대된다. 하지만 두 실장은 “종전이 되더라도 러시아가 재건사업, 치안 유지 등을 위해 북한에 잔류를 요구할 수 있으며, 북한은 반대급부로 대북제재 해제 등을 요구할 수 있다”며 “북한군이 오래 러시아에 주둔할수록 한국에는 위협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한·미가 ‘워싱턴선언’을 통해 발표한 핵협의그룹(NCG) 및 확장억제 공약도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워싱턴선언에서 언급된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등에 있어 트럼프 정부는 한국에 비용 부담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트럼프는 타국에 대한 ‘확장억제’ 제공 가치를 낮게 본다”며 “한국은 미국의 전략자산을 써달라고 요구하기보다 차후 협상을 통해 한국 내 전술핵 재배치나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등을 요구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주한미군 철수 위협과 맞물려 방위비 분담금 협정의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도 높다. 한·미는 지난달 초 2026년 방위비 분담금을 전년 대비 8.3% 인상한 1조5192억원으로 정하는 내용의 협정을 타결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지난달 ‘시카고 경제클럽’ 주최 대담에서 “내가 거기(백악관)에 있으면 한국은 (주한미군 주둔 비용으로) 연간 100억달러(약 13조6000억원)를 지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현/양길성 기자 3co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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