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표법은 최근 상표 공존 동의 제도를 도입해 5월 1일부터 시행됐다. 본래 상표 등록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문제 되는 것이 선출원(先出願) 상표다.
자신이 출원한 상표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상표가 동일 또는 유사한 상품에 이미 출원돼 등록된 경우 출원 상표를 등록받을 수 없게 된다. 이는 동일하거나 유사한 상표가 모두 등록돼 동일 또는 유사한 상품에 사용되면 일반 대중에게 해당 상품이 누구의 것인지, 어느 기업의 것인지 알기 어려워지는 혼동이 발생하기 때문에 당연하다.
그런데 특허청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체 거절상표 중 40% 이상이 선출원 상표 때문에 거절됐다. 그중 약 82%가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이 출원한 상표였다. 특허청은 “‘상표 공존 동의 제도’의 도입으로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들이 안정적인 상표 사용이 가능해져 상표등록 거절로 인한 경영상 불안정을 해소하고 추후 발생할 수 있는 상표 분쟁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허청이 예로 든 사례를 보자. A가 식당을 준비하면서 상표를 출원했는데 비슷한 상표가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확인해 보니 먼 곳에 있는 B가 유사한 이름으로 식당 경영을 하고 있었다. 장소도 떨어져 있고 메뉴도 달라 소비자들의 오인이 없을 것 같아 B는 상표 사용에 동의했지만 A는 법에 따라 결국 상표등록을 하지 못했다. 제작해 둔 간판 등을 모두 폐기하는 등의 손해를 입었다. 아울러 특허청은 “미국이나 싱가포르, 일본 등 해외 주요국에서도 같은 제도를 이미 도입해 시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취지에 따라서 개정된 상표법의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본다. 우선 상표법 제34조 제1항은 상표등록을 받을 수 없는 상표들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 동항 제7호는 본래 “선출원에 의한 타인의 등록상표(등록된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은 제외)와 동일·유사한 상표로서 그 지정상품과 동일·유사한 상품에 사용하는 상표를 등록받을 수 없는 상표다”라고 규정해왔다.
그런데 상표 공존 동의 제도 도입에 따라 단서를 신설했다. 이는 “다만 그 타인으로부터 상표등록에 대한 동의를 받은 경우(동일한 상표로서 그 지정상품과 동일한 상품에 사용하는 상표에 대해 동의받은 경우는 제외)에는 상표등록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즉 ‘동일 상표·동일 상품’인 경우에는 동의받아도 상표등록을 받을 수 없으나 이 외에 ‘동일 상표·유사 상품’, ‘유사 상표·동일 상품’, ‘유사 상표·유사 상품’인 경우에는 동의받으면 등록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상표법 제35조 제6항도 신설했다. 기존에는 동일 내지 유사한 상표가 다른 날 출원됐다면 후에 출원한 자는 상표등록을 받을 수 없고, 같은 날 출원됐다면 협의 및 추첨 순으로 하나의 출원인을 결정했다.
상표법 제35조 제6항은 이 경우 먼저 출원한 것으로 인정된 출원인으로부터 동의받으면 뒤에 출원한 것으로 된 출원인도 상표 등록을 받을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물론 동의받았다고 하더라도 상품의 품질을 오인하게 하거나 수요자를 기만할 염려가 있는 등의 사유까지 해소해 주는 것은 아니다. 상표 공존 동의 제도는 크게 ‘동의만 받으면 등록 거절을 하지 못하는 방식’과 ‘동의받았더라도 일반 소비자들의 오인 위험성을 판단하여 등록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 있다.
한국은 전자의 방식을 택한 대신 상표법 제119조 제1항 제5호의2를 신설해 동의받아 등록된 상표의 권리자 또는 동의해 준 자가 소비자가 상품 품질을 오인하게 하거나 타인의 상품과 혼동을 일으킨 경우 취소심판을 할 수 있도록 해 사후적으로 소비자를 보호하고 있다.
참고로 일본은 후자의 방식을 채택했다. 위와 같은 취소심판이 가능하며, 동의해 준 자가 동의받은 자에게 혼동 방지를 위한 적절한 표시를 할 것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2006년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매거진은 비틀스의 레코드 레이블인 애플(Apple Corps)과 현재 스마트폰으로 유명한 애플 사이의 1991년 상표 공존 합의를 소개하며 동의의 어려움에 관해 설명했다. 그러나 특허청이 밝힌 바에 따르면 올해 5월부터 8월까지 4개월 동안 총 447건이 접수됐다고 한다. 상표 공존 동의 제도는 우리나라에서 꽤 좋은 출발을 보이는 것 같다.
김윤희 법무법인(유) 세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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