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미국 대통령선거. 공화당에서는 리처드 닉슨이, 민주당에서는 존 F 케네디가 출마했습니다. 여당 후보 닉슨의 당선이 유력했습니다. 미국 선거 역사상 처음 TV토론회가 열렸습니다. 토론회 전날 닉슨은 정책 연구에 집중했습니다. 내용이 중요하다고 믿었습니다.
반면 케네디는 상당한 시간을 피부를 검게 그을리는 ‘선탠’에 썼습니다. 새로운 미디어인 TV를 통해 젊고 강한 인상을 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라디오로 토론을 들은 유권자들은 닉슨의 손을 들어줬지만 TV를 본 미국인들은 케네디에 환호했습니다. TV로 토론을 본 사람이 훨씬 많았고 케네디는 대통령 자리에 올랐습니다. 새로운 미디어를 활용한 이미지 전술의 승리였습니다.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이기고 당선됐습니다. 1960년 케네디의 선거전략을 떠올린 것은 트럼프의 이미지 메이킹이 해리스를 압도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7월 총격을 받고 성조기를 배경으로 피를 흘리며 손을 치켜든 한 장의 사진이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이에 더해 그 이면에 지지층과 텃밭 지역이 바뀌는 거대한 꿈틀거림도 닮아 있었습니다.
1960년 선거는 민주당 텃밭이었던 남부에서 지지층이 이탈하고 북동부가 민주당의 강력한 지지층으로 편입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수십 년간 계속됐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민주당의 강력한 지지층인 노동자와 미국 사회에 정착한 흑인과 히스패닉, 아시아인 등이 등을 돌렸습니다. 경합주인 러스트벨트 지역을 트럼프가 모두 가져간 것도 그 영향입니다. “집토끼는 계속 집에 머물지 않는다.”
궁금증은 남았습니다. 바이든 정부의 경제성적표는 화려했습니다. 빅테크가 이끄는 주가는 사상 최고치였고,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일자리도 어마어마하게 늘렸습니다. 하지만 이번 선거 승패는 “경제가 갈랐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 괴리는 어디서 온 것일까. 미국 경제지표는 그저 숫자일 뿐이었습니다. 지표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엘리트들에게만 중요했습니다. 뛰어오른 물가 때문에 외식조차 두려워진 미국민들에게 식료품 영수증이 진짜 숫자였습니다. 화려한 경제지표는 오히려 성장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자괴감을 불러일으킨 꼴이었습니다. 이는 미국 민주당의 정체성 논란으로 이어졌습니다. “25세 이상 국민 중 4년제 대학학위가 없는 사람이 60%가 넘는 미국 사회에서 민주당의 엘리트들은 점점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반면 트럼프는 이 지점을 파고들며 노동자의 마음을 샀습니다. 지표와 체감의 괴리, 엘리트와 대중의 괴리는 이번 미국 대선을 평가하는 하나의 키워드입니다.
그렇다고 트럼프 시절에 경제가 좋았냐 하면 전혀 아닙니다. 일자리는 줄었고 성장률도 낮았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트럼프를 “미국 경제를 살릴 슈퍼맨”으로 인식했습니다. 메시지도 간명했습니다. “미국 이익, 미국 노동자의 삶 외에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가능한지는 선거판에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레이건 정부의 재정적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증가했고 그는 예산으로 자신의 농장을 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레이건이 자신의 돈을 굳건히 지켜준 대통령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인식이 진실보다 중요하며 후보자에게 중요한 것은 퍼셉션과 감성이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트럼프 2.0 시대를 다뤘습니다. 세상은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의 캐릭터처럼 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외풍에 취약한 대한민국은 더욱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만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겠지요.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쉽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뚜렷한 괴리가 두 가지 보였습니다. 국민 정서와 용산 정서의 괴리가 하나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트럼프 시대를 바라보는 인식의 괴리였습니다. 트럼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했습니다. 미국이 지원하지 않으면 우크라이나는 버틸 수 없습니다. 트럼프가 당선된 다음 날 한국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언급했습니다.
트럼프의 코드를 맞춰가면서도 한국의 국익을 확보할 정치적 감각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어서 걱정입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국장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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