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용인에는 50년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던 ‘비밀의 숲’이 있다. 가을이 되면 황금빛 비단을 깔아놓은 듯 샛노란 은행잎으로 가득 차는 곳, 반세기 동안 사람의 발길을 최소화하며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지켜온 곳. 삼성물산 리조트부문 에버랜드가 운영하는 향수산이다.
향수산 일대는 올해 단 17일간만 소수의 일반 대중에게 공개됐다. 지난 5일 찾아간 향수산은 에버랜드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었다. 지난달 25일부터 오는 10일까지 열리는 은행나무 숲길은 5㎞에 이르는 트레킹 코스와 명상돔, 생태연못 등이 자리했다. 이 일대의 은행나무는 무려 3만 그루. 예약 프로그램은 모집 시작 2분 만에 전 회차가 마감됐다.
향수산 은행나무는 국내에서 가장 큰 은행나무 군락지다. 수북이 쌓인 은행나무잎 중 하나를 손에 들고 한참을 바라보던 차, 이준규 에버랜드 식물콘텐츠그룹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행나무가 사실 멸종위기종인 거 아셨나요?”
도심에 널리고 널린 은행나무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니, 귀를 의심했다.
“전 세계적으로 은행나무는 오직 1종 1속 1과 1목 1강 1문만 존재하는 희귀한 식물이에요. 오래 살아남으려면 생물 다양성이 필수인데, 은행나무는 딱 한 가지 종만 있는 거죠. 은행 냄새가 너무 고약해서 동물을 통한 수정도 잘 안되기 때문에 사람의 손길이 꼭 필요해요. 언제나 자연을 파괴해온 인간이 은행나무에만큼은 꼭 필요한 존재인 겁니다.”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아 아름다움을 지킨 향수산도 역설적으로 사람 덕에 만들어졌다. 50~60년 전만 해도 향수산은 민둥산이었다. 돌과 물줄기가 많아 나무가 자라기 좋지 않은 환경이었다.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굳이 이곳을 택했다. 빈곤한 땅을 경제로 일으킨 것처럼 척박한 땅도 되살려보기로 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조금이라도 경제에 도움이 되기 위해 사과나무 살구나무 밤나무 등을 식재했고, 전문가들을 데려와 한 그루 한 그루 돌봤다. 남는 자리엔 은행나무 묘목을 심었다.
‘조연’이었던 은행나무가 이 산의 주인이 된 건 1980년대 후반부터다. 기록적인 한파가 불어닥치면서 은행나무를 제외한 모든 나무가 죽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은 은행나무처럼 되자’는 뜻에서 다른 나무가 있던 자리에 은행나무 5만 그루를 심었다고. 이후 나무와 나무 사이의 간격을 조절하기 위한 간벌 작업을 거치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에버랜드는 이번 시범 공개를 거쳐 대중을 위한 프로그램을 점차 확대할 예정이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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