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한구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사진)은 2022년 본부장 임기를 마친 이듬해부터 미국 정부 정책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싱크탱크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의 통상관료들과 친분을 유지하면서 미국 현지 사정에 가장 밝은 통상 전문가로 꼽히는 이유다.
여 전 본부장은 8일 한국경제신문 인터뷰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보다 보편관세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편관세가 한국 중국 멕시코 등 당면한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그물’이라면 한·미 FTA 같은 개별 FTA 재협상은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는 ‘낚싯대’”라며 “여러 나라와 현안이 산적한 미국은 의회 비준 등 절차가 수개월 걸리는 FTA 재협상보다 신속한 보편관세를 우선시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 본부장은 “트럼프 1기 관료들을 만나보면 1기 때도 공약 대부분을 실행한 만큼 (보편관세는) 허풍이 아니라고 강조한다”며 “1971년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도 모든 수입품에 10% 관세를 부과한 선례가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미국의 산업정책에 적극 호응해 공급망과 교역을 미국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는데 관세를 부과하면 동력이 사라지고, 미국의 지정학적 이익에 반할 것이라는 논리를 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IRA와 칩스법의 완전 폐기 가능성은 “두 법안 덕분에 엄청난 투자가 이뤄진 지역 대부분이 공화당 표밭”이라며 “완전 폐기는 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그는 “트럼프 당선에 큰 역할을 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중대 변수”라며 “전기차와 배터리 등 연관 산업은 ‘머스크 요인’이 고려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여 전 본부장은 “최근 미국 상무부는 중국산 부품과 소프트웨어가 포함된 전기차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규정을 제안했다”며 “지금처럼 하나의 라인에서 미국 수출용과 중국 수출용을 함께 생산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기업들은 공급망을 두 개로 나눠 관리해야 할 것”이라며 “이에 따른 비용 증가와 생산 효율 저하, 제품 가격 인상은 기업이 감내해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
여 전 본부장은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연구원들은 관세 장벽을 쌓아 올리는 오늘날의 미국을 ‘포트리스 아메리카(요새미국)’라고 부른다”며 “티셔츠, 신발 같은 저부가가치 상품을 제외하면 중국산 제품이 더 이상 미국 시장에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 기업이 포트리스 아메리카의 관세장벽을 넘기만 하면 중국 기업과 경쟁 없이 미국 시장 점유율을 높일 기회이기도 하다”며 “현지 기업 인수합병(M&A), 합작법인(JV) 설립 등 다양한 방안을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영효/이슬기 기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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