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선거 운동 기간 한 말이다. 이 발언에 반도체업계와 투자자는 동요했다. 삼성전자, 대만 TSMC 등이 ‘미국에 공장을 지으면 보조금을 주겠다’는 칩스법을 믿고 현지에 공장을 건설 중이기 때문이다. 미국 싱크탱크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의 롭 앳킨슨 이사장은 “해외 반도체 기업은 미국이 약속한 보조금을 아직 하나도 받지 못했다”며 “자금 집행을 다음 정부로 넘긴 건 바이든 행정부의 실수”라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되고 3일이 지난 가운데 반도체주는 예상과 달리 견조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6~8일 3.78% 상승했고, TSMC도 이 기간 3.81% 올랐다. 삼성전자는 1.04% 하락했지만 코스피지수(-0.61%)와 큰 차이가 없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과거 행적에 비춰보면 지원 백지화가 말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삼성전자가 440억달러를 들여 짓고 있는 공장은 텍사스주에 있고, SK하이닉스가 38억7000만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공장은 인디애나주에 들어설 예정이다. TSMC의 공장 건립 지역은 애리조나주다. 공화당 선거인단 득표율은 텍사스주에서 56.3%였고, 인디애나주에서는 58.6%였다. 애리조나주의 공화당 지지율도 52.5%로 전국 평균(50.8%)보다 높았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보조금 혜택을 축소하면 기업들이 현지 공장을 계획대로 짓지 못하게 된다”며 “반도체 공장이 건립되면 현지에 적지 않은 일자리가 생길 텐데 이를 백지화하면 일자리 창출도 다 무위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서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는 구호를 내세운 만큼 그런 상황을 초래할 가능성은 작다고 시장이 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對)중국 강경파다. 중국산 수입품에 6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고, 중국 반도체 기업에 수출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입장도 내비쳤다. 중국 반도체 제재는 지금까지 첨단 분야에 집중됐지만 앞으로 범용(레거시) 반도체로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중국 반도체 기업을 향한 제재 강화로 한국, 대만 기업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작 트럼프 1기 때 한국과 대만 반도체 기업의 주가는 큰 폭으로 올랐다. 그가 취임한 2017년 1월 20일부터 4년 동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134.41%, 165.51% 급등했다. TSMC도 257.46% 상승했다. 반도체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시장 선도 기업들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류영호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술력을 고려할 때 인텔 등 미국 기업은 한국과 대만 반도체 기업의 역할을 대신하기 어렵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말로만 압박하고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을 가능성이 있어 증시에 ‘지켜보자’는 심리가 퍼져 있다”고 설명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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