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드디어 대통령 '탄핵'의 깃발을 힘껏 들었습니다. 장외 집회를 시작하고 지지자들에게 총동원령을 내리면서부터입니다. 민주당 지도부 인사들은 직접적으로 '탄핵'을 언급하는 것은 자제하고 있지만, 장외 집회에서 외치는 '김건희 여사 특검법'이 결국은 대통령 탄핵을 향한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입니다.
물론 민주당의 장외 집회를 두고는 이보다 다양한 해석도 나옵니다. 여권에서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1심 선고와 위증 교사 1심 선고가 오는 15일과 25일에 나오는 것과 연관이 있지 않겠느냐는 시각도 갖고 있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이 대표가 9일 집회 참여를 독려하자 "대한민국 건국 이래 특정인의 범죄혐의에 대한 법원의 유죄판결을 막기 위해 진영 전체에 총동원령을 내리는 이런 장면은 없었다"며 힐난했습니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장외집회를 둘러싼 여러 가지 정치적 계산이 있겠지만, 이번엔 이런 복잡하고 재미없는 이야기보다는 '집회 인원'에 대해서만 따져보고자 합니다. 원래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요.
민주당이 자체 추산한 지난 2일 집회 추산 인원은 30만명입니다. '30만명'이면 상암월드컵경기장을 6번 가득 채우는 인원입니다. 그런데 경찰 추산 인원은 1만7000명에 그쳤습니다. 단순한 계산 착오라고 하기엔 '17배'의 간극을 메우기 어려워 보입니다.
국민의힘 측에선 경찰의 손을 들었습니다. 서범수 사무총장은 간담회에서 민주당 집회 참가 인원에 대해 "서울시 도시 데이터를 보면 전날 14시부터 16시까지 인원이 2만6000~2만8000명이라고 한다. 평소(주말)에는 1만3000명 정도가 잡힌다"면서 "1만5000명 수준으로 집회에 사람이 모인 것"이라고 계산했습니다.
반면 민주당 인사들의 반응은 다양했습니다. 우선 '강성' 성향의 민주당 인사들은 자체 추산 인원인 '30만 명이 맞는다'고 주장했습니다.
"한 30만 명 가까이 왔다. 서울역에서 시청역까지 한 4차선 도로를 꽉 메워주셨다. 원래 그렇게 (경찰 추산 인원이) 항상 다르게 나오는 건데, 이렇게 보시면 알겠지만 서울역부터 시청역 쭉 가는 것 보면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 아니겠나? 저희는 그래서 추산으로 한 30만 명 보고 있는 거다." (박성준 민주당 의원, CBS 라디오)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 진짜 어마어마했고 한 바퀴 다 돌려면 진짜 한두 시간 걸렸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실제로 제가 확인한 인파도 매우 많았는데, 1만 5000 추산,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경찰이 일부러 축소한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전용기 민주당 의원, CBS 라디오)
그러나 민주당 내에서도 '30만 명은 안 될 것 같다'는 반응도 나왔습니다. 대체로는 경찰 추산보다는 많지만 10만 명 내외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30만으로 추산을 했는데 제가 숫자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만 최소 10만 이상은 넘어 보인다. 많은 시민도 동참한 것으로 현장에서 느꼈다." (김영배 민주당 의원, KBS 라디오)
"대개 여러 번 경험을 보면 경찰 추산에다가 3~5 정도 곱하면 대충 맞는다. 경찰 추산을 2만 정도 잡으면 10만은 좀 안 되는 뭐 그런 정도다. 한 6~7만 생각하면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숫자가 중요한 건 아니다" (신경민 전 의원, KBS 라디오)
그러나 이 숫자가 '30만'인지 '10만'인지는 누구도 정확하게 말을 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숫자'조차 진실을 말하기는 힘든 현실이 한국의 정치와 닮은꼴이라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우리나라 정치 문화는 시위 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다"며 "경찰은 현장에 있는 사람만 축소해서 딱 추산하고, 주최 측은 왔다 갔다 하는 사람, 앉아 있는 사람, 구경하는 사람도 다 포함해서 상당히 부풀리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경찰 추산과 주최 측 추산은 옛날부터 계속 빗나갔고, 지금도 그렇지만 어느 쪽이 일방적으로 거짓말을 한다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며 "다만 일반적으로는 경찰 추산에서 2~3배 정도 본다"고 덧붙였습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도 "경찰 추산의 두 배 정도가 실제 오는 사람들일 것"이라며 경찰 측은 인원을 축소하고, 주최 측은 인원을 부풀리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엄 소장은 또 "원래 민주당이 옛날부터 주최 참여 인원을 많이 부풀린다. 민주당 주류가 과거 586 운동권들인데, 그때부터 그런 습관이 생긴 것"이라며 "집회 참여 인원이 무당층이나 중도층의 참여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어서 자꾸 부풀리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민주당은 오는 9일에도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규탄하기 위한 장외 집회를 엽니다. 이 대표는 이를 앞두고 "행동하는 양심들의 뜨거운 함성으로 시청역을 가득 메워달라"며 참여를 독려했습니다. 민주당이 2차 장외 집회 인원으로 몇 명을 추산할지 지켜볼 대목입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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