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한 지 3일 만에 홀 매니저와 다투고 퇴사한 중국집 배달원이 "부당 해고로 정신적 충격을 받아 일을 못 하는 상태가 됐다"며 2년 치 연봉과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위자료 등을 포함해 무려 4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다. 배달하는 김에 전단지를 돌려주면 안 되겠냐고 요구한 게 발단이 됐다. 전문가들은 "일부 사람들이 노동법을 악용하는 경우가 도를 넘었다"며 "감정적인 발언이나 판단을 자제하고 근로기준법에 근거한 인사 관리를 해야 뒤탈이 없다"고 조언했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2민사부는 지난 9월 중국집 배달원이었던 A와 그의 아내가 중국집 사장과 지배인, 홀매니저를 상대로 청구한 해고무효확인 및 임금 등 청구의 소에서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2023가합2805).
입사한지 3일째 되는 날 저녁 9시경 지배인의 아들인 홀매니저는 A에 "배달이나 그릇을 수거하는 과정에서 주택이나 건물에 들어가 전단지 배포 등 홍보 업무도 수행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A는 이를 거부했다. 퇴근 시간을 2시간 넘겨 얘기를 나눴지만, A가 끝까지 거부해 감정이 상한 홀매니저는 "홍보 업무를 하지 않을 거면 출근하지 말라"고 말했다.
다음날 A가 출근하지 않자 지배인이 "내일 출근하세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 하지만 A는 "아드님(홀매니저)이 출근하지 말라고 해서 내 의사에 반해 근로관계가 종료됐다"고 답장하고 사업장에 출근하지 않았다. 이후 지배인은 전화로 "그럼 일이 종료됐으니 (3일 치) 임금을 계산해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곧이어 중국집에는 '소송 지옥'이 펼쳐졌다. A는 "부당해고 당했다"며 홀 매니저와 지배인, 사장 등 3명을 상대로 "해고 기간 임금과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한 것.
A는 먼저 "부당해고라는 불법행위로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고, 해고가 무효로 판단 받아도 복직해서 근로를 제공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근로를 제공하지 못하는 기간 732일분에 대한 임금 상당액과 연차휴가미사용수당, 퇴직금을 합쳐 1억8700만원을 지급하라"고 청구했다. 홀 매니저와 전단지 업무와 관련해 늦게까지 얘기를 나눈 것에 대해선 '연장·야간근로' 수당도 알뜰하게 청구했다.
황당 청구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A는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 1억9500만원도 별도로 청구했다. 일한 기간이 3일에 불과한데 거액의 위자료를 청구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청구 내용도 어마어마했다.
A는 "배달 업무 외에 홍보업무를 시키면서도 구인 공고에는 배달업무만 담당하는 것처럼 냈다"며 위자료 2000만원을 청구했다. 이어 홀매니저가 자신과 전단지 업무와 관련해 늦게까지 얘기한 것도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위력으로 감금한 것"이라며 3000만원을 요구했다. 또 감금을 통해 '강제근로'를 시킨 것이라며 3000만원을 별도로 청구했다.
그밖에 휴게시간을 부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800만원, 근로계약서 작성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00만원, 직장 내 괴롭힘을 이유로 300만원, 직장 내 괴롭힘 발생시 조치 의무 미이행을 이유로 1200만원, 모멸감을 줬다는 이유로 2000만원, 부당해고와 관련된 위자료로 7000만원을 요구했다. 거기에 A의 부인 역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며 3000만원을 청구했다. 결국 A의 청구 금액은 총 3억8200만원에 달했다.
재판부는 "홀매니저에게는 해고 권한이 있다고 인정할 수 없다"며 "되레 지배인이 내일 출근하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 원한다면 근로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만 봐도 (해고가 아니라) 근로관계를 '합의'로 종료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해고가 없었다는 판단 아래 해고무효 확인청구, 임금청구도 모두 기각했다.
법원은 늦게까지 얘기를 나눈 게 연장야간 근로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A의 업무는 배달업무"라며 "홀 매니저와 홍보 업무에 대한 얘기를 나눈 게 '사용자'의 지휘·감독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서는 "홍보 업무 수행을 요구한 것은 맞지만, 피고들이 불법행위를 했거나 금전적인 배상이 필요한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꼬집고 A의 청구를 전부 기각했다.
근로계약서 미작성에 대해서는 "배달 직종의 특성상 근로제공에 대한 구두 합의가 있어도 짧은 시일 내에 근로계약이 합의해지 되거나 배달원이 임의로 근로제공을 중단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위자료가 발생할 정도의 불법행위는 아니라고 봤다. 벼룩시장 공고에 홍보업무를 미기재한 것에 대해서도 "배달이나 그릇 수거 과정에서 전단지 배포 등 홍보 업무가 배달 업무와 전혀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허위로 볼수 없다고 봤다.
한 노무사는 "부당해고의 경우 불법행위에 해당하며 이는 위자료 청구로 이어질 수는 있다"며 "청구 항목을 보면 A씨의 경우 관련 소송 경험이 적지 않은 사람으로 보인다. 소송을 당한 사업주 입장에서는 매우 당황스럽고 큰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해당 사건은 다소 극단적 사례지만 실제 현장에선 영세 사업주들이 노동법에 어두운 점을 악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특히 상당수의 사건이 사용주 등의 감정적 발언을 꼬투리 잡는 경우가 많아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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