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용의 디지털 한류 이야기] 대중문화 제작자가 된 인공지능

입력 2024-11-10 17:06   수정 2024-11-11 00:16

올초 큰 인기를 끈 아이돌 그룹 세븐틴의 신곡 ‘마에스트로(Maestro)’와 최근 블랙핑크 멤버인 로제와 미국 팝 가수 브루노 마스가 함께 한 노래 ‘아파트(APT)’는 문화콘텐츠 제작에서 인공지능(AI)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고 있다.

세븐틴의 마에스트로는 올 4월 발매해 큰 인기를 끌었다. 뮤직비디오는 ‘무엇이든 인공지능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현실 속 진정한 마에스트로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최첨단 로봇이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는 내용을 담고 있고, 뮤직비디오에는 실제 AI가 생성한 장면도 포함돼 있다. 로제와 마스의 아파트는 지난달 혜성처럼 등장했다. 한국의 술 마시기 게임에 착안해 만들어진 노래 아파트는 재미있고 쉬운 멜로디, 그리고 중독성 있는 가사 때문에 전 세계에서 인기몰이 중이다.

둘 다 좋은 노래지만, AI 사용 여부는 큰 차이를 만들어냈다. 세븐틴의 마에스트로를 본 많은 팬은 “AI가 좋은 노래와 댄스를 만들어내는 보조 역할을 한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전적으로 노래 생산 과정을 주도한다면 더 이상 해당 그룹과 노래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인간미가 묻어나지 않으면 작품이 외면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반면 아파트는 로제가 직접 노래를 만들어냈다.

대중문화에서 AI를 사용하는 것이 꼭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증거는 또 있다. 지난해 나온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는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장군 영화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명량’과 ‘한산’, 그리고 ‘노량’으로 이어지는 3부작 영화에서 첫 번째 명량은 1800만 명이 관람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노량은 720만 명만 관람하면서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다. 영화 명량과 달리 노량은 AI 기술을 접목한 특수효과에 크게 의존했다. 조선과 일본 수군 간 해전이 핵심인데 이를 AI 기술에 의존했다. 제작진은 당시 “바다 전투 장면을 특수효과로 처리해 물 위에서 찍지 않고도 바다 장면을 안정적으로 촬영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기술력을 증명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었지만 관객들은 인간의 역할이 빠진 이 영화를 환영하지 않은 것 같다.

이달 말 개봉 예정인 할리우드 영화 ‘글래디에이터 Ⅱ’는 전혀 다른 접근법을 사용했다. 무려 4310억원이라는 제작비를 들여 로마 콜로세움을 실제 크기의 60%로 만들었다. 여기에다 물을 채워 배를 띄우고 해전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AI에 근간한 특수효과를 당연히 사용했으나, 인간의 땀과 노력으로 만든 영화라는 것을 강조한다.

문화 생산자들은 챗GPT 같은 생성형 AI를 이용해 영화, 드라마, 예능, 음악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보다 이른 시간 내에 대중문화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 때문에 AI를 사용하는 문화 생산은 더욱 확대될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사람들의 땀 냄새가 묻어나는 작품의 진정성도 중요하다. 대중문화는 인간의 감정과 상호 간 느낌을 우선시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진달용 사이먼프레이저대 특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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