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그룹 계열사 이수페타시스가 코스닥시장 상장사 제이오 인수를 위해 55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결정하며 투자자의 비판을 받고 있다. 한날한시에 논의된 호재성 정보는 시간 외 단일가 매매 시간에 알린 반면 주식가치 하락 우려가 있는 유상증자 소식은 거래가 마감된 후 공시하면서다. 기업에 불리한 정보를 투자자들의 관심이 덜한 시점에 공표하는 '올빼미 공시'가 또다시 개인투자자를 울린 셈이다. 정부의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사례란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이수페타시스 주가는 지난달 24일부터 지난 6일까지 유상증자 소문이 돌며 내리막길을 걸었다. 제이오 인수·합병(M&A)과 유상증자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자 이수페타시스는 지난 4일 "유증, M&A 관련 구체적인 사항이 확정되지 않았다"며 "사업구조 다각화와 신규시설 투자 자금 조달 방안에 대해 유상증자 등 다각도로 검토 중이나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항이 없다"고 공시했다.
하지만 유상증자가 현실화하며 주가는 재차 급락했다. 지난 8일 이수페타시스는 550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진행한다고 공시했다. 시설 자금과 제이오 증권 취득 자금 마련을 위해서다. 유상증자 규모는 8일 종가 기준 이수페타시스의 시가총액인 2조80억원의 27.3%에 달했다.
주주들 사이에서는 공시 시점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수페타시스는 유상증자, 시설 투자 관련 이사회를 같은날 오전 9시에 진행했다. 이후 오후 4시 55분 이수페타시스는 지난 8월 대구시와 맺은 투자협약(MOU) 관련 확정 공시를 냈다. 호재성 정보는 시간 외 단일가 거래 시간에 공시됐지만, 악재성 정보는 모든 거래가 끝난 뒤 공개된 셈.
실제로 시장에선 시설 투자를 호재로 받아들였다. 같은 날 오후 4시 50분 3만1650원이던 주가는 공시 직후인 오후 5시 3만3000원까지 올랐다.
하지만이 이 같은 주가 상승세는 오래가지 못했고, 투자자들은 분노하고 있다. 한 주주는 포털 종목 토론방에 "'밸류업'이 아닌 '밸류다운'의 끝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했다.
이수페타시스는 '코리아 밸류업 지수'에 편입돼 있다. 이 지수는 밸류업 지표가 우수한 종목으로 구성됐다. 국민연금도 지난달 17일 이수페타시스 주식 23만7209주를 매수했다. 지분율은 10.27%에 달한다. 주가가 급락한 탓에 국민연금의 평가이익도 줄어들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유상증자 공시에 대해 "정부가 밸류업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상황에 찬물을 끼얹은 행위"라며 "국내 증시의 신뢰도가 낮아질까 우려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유상증자 관련 기업설명회 시점도 석연치 않다고 지적했다. 공시 당일 오후 7시 이수페타시스는 애널리스트를 대상으로 온라인 기업설명회를 진행했다. 통상 기업설명회는 애널리스트와 일정을 조율하기 위해 여유를 두고 잡지만, 이번 기업설명회는 공시 15분 뒤 진행됐다.
이수페타시스 관계자는 "시설 투자, 타법인출자, 유상증자 순서로 공시가 진행됐다. 공시 안건에 대한 이사회가 끝난 후 계약서를 체결했다. 계약서 체결 후 법무법인 검토를 거치며 시간이 걸렸다"고 밝혔다.
이어 "거래소와 장 마감 후 4시부터 공시 관련 업무를 진행했다"며 "제이오는 코스닥 상장사라 공시가 상대적으로 용이했기 때문에 공시가 빨랐다. 거래소가 이수페타시스에 대해 심도 있게 확인했고, 요청자료가 많아 심의과정에서 지체가 됐다"고 했다.
기업설명회에 대해선 "공시 후 회사를 담당하는 애널리스트에게 문자, 전화로 급하게 연락해 기업설명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설명회 내용은 전달하지 않았다"며 "같은 시각 홈페이지에 관련 자료를 게시해 일반 투자자도 확인할 수 있게 조치했다"고 해명했다.
증권가에서도 유상증자에 의아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조상증자로 조달할 자금 5000억원 중 3000억원은 제이오 경영권 인수에 사용되는데 제이오와 이수페타시스 간 시너지가 불분명하다는 이유에서다. 이수페타시스는 탄소나노튜브(CNT) 생산 및 플랜트엔지니어링 기업 제이오 창업자이자 최대주주인 강득주 대표가 보유 중인 지분 28.32% 중 18.1%(575만주)를 주당 2만7500원, 총 1581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와 함께 이수페타시스는 제이오에 1416억원을 투입한다. 제이오 유상증자에 참여해 996억원의 신주를 받는 동시에 42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를 인수할 예정이다. 인수에 투입된 전체 금액은 2998억원이다.
유상증자에 대해 양승수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이수페타시스의 주주는 인공지능(AI) 기반 고다층기판(MLB)의 성장성을 공유하기 위한 투자자이지 2차전지 투자자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 증권사는 이수페타시스에 대한 투자의견도 '매수'에서 '중립'으로 낮췄다.
이수그룹 계열사 중 2차전지 소재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수페타시스가 제이오 인수 주체로 나선 점도 문제로 꼽힌다. 코스피 상장사 이수스페셜티케미컬은 전고체 배터리에 사용되는 핵심 원료인 황화리튬을 생산·판매하고 있다. 제이오도 전고체 배터리 소재인 CNT를 생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유상증자 성공 여부나 자금 조달력이 아닌 사업 시너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한다면 이수스페셜티케미컬이 제이오를 인수하는 게 적절했다는 목소리가 있다.
김소원 키움증권 연구원은 "이수페타시스와 제이오 간 시너지는 단기간 내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최근 2차전지 산업의 불확실성이 커진 점, 특정 고객사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높은 점도 리스크"라고 분석했다.
이수페타시스는 이날 개장 전 보도자료를 내고 "인쇄회로기판(PCB)에 집중된 단일 포트폴리오를 벗어나 사업을 다각화하기 위해 장기간 신사업을 검토했다"며 "CNT는 폭넓은 활용도가 장점이고 반도체 노광장비 핵심 부품인 극자외선(EUV) 팰리클에도 활용될 수 있으며 전고체 핵심 소재 개발사인 이수스페셜티케미컬과의 시너지 창출도 기대해볼 수 있다"고 했다.
이수페타시스 관계자는 "이수스페셜티케미컬과 제이오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전고체와 CNT는 각기 다른 소재일 뿐이다"라며 "이수페타시스가 제이오를 인수해 이수스페셜티케미컬을 도와주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CNT 시장이 2차전지 도전재로 개화했을 뿐이며 이수페타시스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항공 등 적용 분야 확대 가능성에 주안점을 뒀다는 주장이다.
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young7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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